[책의 향기]여성이라 입학 불허? 차별의 벽 깬 입법 투쟁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30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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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제정된 남녀교육평등법… 美 역사 바꾼 여성들의 이야기
배움 문턱서 번번이 좌절했지만, 개인적 경험을 사회 변혁 계기로
◇타이틀 나인/셰리 보셔트 지음·노시내 옮김/624쪽·2만9000원·위즈덤하우스

왼쪽부터 미국의 민권 변호사 폴리 머리, 전국여성단체(NOW)를 1966년 창립한 소니아 프레스먼 푸엔테스, 그리고 버니스 
샌들러. 이들은 1972년 미국 교육계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타이틀 나인’ 제정을 이끌어냈다. ⓒ하버드대 
레드클리프연구소 슐레진저도서관·위즈덤하우스 제공
왼쪽부터 미국의 민권 변호사 폴리 머리, 전국여성단체(NOW)를 1966년 창립한 소니아 프레스먼 푸엔테스, 그리고 버니스 샌들러. 이들은 1972년 미국 교육계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타이틀 나인’ 제정을 이끌어냈다. ⓒ하버드대 레드클리프연구소 슐레진저도서관·위즈덤하우스 제공
“미국에서 그 누구도 성별을 이유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에서 제외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차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1972년 미국에서 제정된 남녀교육평등법 ‘타이틀 나인’의 첫 문장이다. 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기까지 차별의 장벽을 몸으로 부딪혀 넘어야 했던 한 여자가 있었다. 바로 버니스 레스닉 샌들러(1928∼2019)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NYT) 등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한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샌들러의 ‘타이틀 나인’ 법 제정 투쟁기와 이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책은 자신이 겪은 ‘입학 불허’, ‘면접 탈락’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 샌들러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1968년 미국 메릴랜드대 교육학과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둔 샌들러는 교원 채용 프로그램에 수차례 지원했지만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전문직 일자리 공고란 곳곳엔 ‘남성 학자’라는 식으로 성별을 특정한 자격 요건이 적혀 있었다.

계속되는 탈락의 장벽 앞에서 샌들러는 좌절하기보다 성차별을 입증할 근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버지니아대는 여성 지원자 2만1000명을 불합격 처리했다. 같은 시기 불합격시킨 남성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미국 노동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과 인문대학원 정년 보장 교수 473명 가운데 여성은 없었다. 교육계의 성차별이 구조적 관행이란 증거였다.

교육계 성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선 강력한 법이 필요했다. 연방정부와 계약을 맺은 대다수 대학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 11375호가 1967년 발표됐지만, 한계가 있었다. 행정명령은 법률의 지위를 갖고 있지 않은 탓에 대통령이 바뀌면 언제든 바뀔 수 있었던 것. 샌들러는 전국여성단체 등과 힘을 합쳐 미국의 모든 법학전문대학원을 고발하는 동시에 이들과 함께 새로운 법 제정에 나섰다. 교육에 있어 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안 통과에 힘을 보탤 의원들을 접촉하고, 언론과 대학에 교육계 성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2년간 벌였다. 그 결과 1972년 6월 23일 닉슨 대통령은 타이틀 나인이 담긴 ‘교육수정법’에 사인했다.

무엇보다 타이틀 나인은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스포츠 교육계의 풍경을 바꿨다. 법 제정 첫해인 1973년 고등학교 대표팀에서 선수로 뛰는 여학생의 수는 1년 전과 비교해 약 3배로 늘어 81만7073명이 됐다. 2017년 고등학교 여자 운동선수는 50년 전보다 10배 이상 많아졌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미국 의회가 타이틀 나인을 통과시킨 일에 대해 “우리 브랜드의 유전자(DNA)를 구축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한 배경이다.

그렇다면 50년 전 샌들러를 가로막았던 성차별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2018년 미국의 여성 전임 교수 비율은 거의 절반에 가까웠지만, 여성 정교수는 3분의 1에 그쳤다. 2017년 고교 여자 운동선수는 50년 전보다 10배 이상 많아졌지만, 여자 운동팀 지도자는 59%가 남성이었다. 타이틀 나인의 불씨를 지폈던 샌들러는 법 제정 후 2년 뒤면 교육 분야의 성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거라 믿었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2019년 세상을 떠나기 전, 샌들러는 성차별이 자신의 생애보다 더 길고 질길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원제는 ‘37 Words’. 타이틀 나인의 첫 문장은 37개 어절로 이뤄져 있다.

#여성#차별의 벽#입법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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