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환경이 휙휙 달라지고 있다. 영화와 방송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유튜브 틱톡과 같은 매체에 자리를 잃어가고, 또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세상이다.
살아오면서 어지간한 변화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지금의 변화는 놀랍다 못해 감당이 안 될 때가 많다.
이런 역동적인 시대에 살면서 시나리오 작가는 어디에 있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시류에 발 빠르게 편승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테고, 우직하게 사는 것만이 미덕은 아닐 것이다.
당선 소식을 듣고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인생길의 모든 일에는 거기에 딱 맞는 때가 있다.
때가 되면 질문하게 되고, 때가 되면 해답이 떨어진다. 이번 당선은 내게, 그동안 해왔던 그대로, 옆을 돌아보지 말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소중한 해답을 준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또 곁에서 늘 응원해준 가족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내 몫만 남았다. 이번 당선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이 고민하며 작품 활동을 해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 2024년 첫날 새롭게 시작된 울림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다. △1964년 서울 출생 △홍익대 미술학과 박사
울림 있는 서사… 악착같은 핍진성 놀라워
● 심사평
‘솔롱고스’는 작가가 오랜 시간 취재하며 발품을 판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쓸쓸한 몽골의 초원과 호수가 등장하고 매력적인 할아버지와 함께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1970,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한국을 떠난 이민자들의 사연과 정서가 많이 닮아 있는 작품이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고, 작품의 핍진성에 악착같이 매달린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죽어도 Go!’는 세대, 젠더 간 갈등을 잘 봉합해서 좋았다. 다만 세대 갈등을 나이로만 계산하고 이야기를 풀어 가다 보니 공감대가 얇았다. ‘파파야 초콜릿’은 대사가 위트 넘친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영화적 장르에 맞게 구성도 제 모양을 갖췄지만 영재에 대한 동화의 마음의 행로가 비현실적이었다. 멜로 장르를 독창적으로 쓴다는 건 쉽지 않다. ‘세기의 사랑’이 그렇다. 배경만 바꿔도 참신한 작품이 될 수 있다. 100분 내외의 영화적 구성도 잡혀 있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나리오는 없다. 최근 영국 버밍엄대에서 6000여 편의 영화를 분석한 결과 가장 큰 수익을 낸 이야기는 ‘구덩이에 빠졌다가 탈출한 이야기’고, 수익성과 관계없이 관객들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가난뱅이가 백만장자가 되는 이야기’였다. 또 관객들은 비극보다는 해피엔딩을 선호한다. 저마다 살기 팍팍하고 힘든 시대에 영화를 통해서나마 위로를 받고 싶은 이유겠다.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시대에 이런 데이터도 참조하면 소재를 선택하고 작품을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낙선작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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