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지 않기로 한 문장을 애써 긍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고쳐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첩에 적어가며 17년을 수집한 단어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요. 처음의 틀 밖으로 새어나가는 문단을 통째로 붙잡아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뒤돌아보니 글을 쓰는 동안의 삶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하며, 어디선가 분리하고 무언가와 합체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겨울 부다페스트행 야간열차처럼.
나이 듦도 총총하게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우리는 이제 호모 헌드레드라는 종족이 되었다죠.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삶의 시니어들은 변두리가 아니라 경계의 밖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아버지가 작고하시고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간은 아버지라는 안경을 맞춰 쓴 것 같았습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맺히더니 조금씩 둥그레졌습니다. 새 문서를 열고 커서를 오랫동안 응시했습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듯, 때로는 거대한 망치로 때리는 듯 그 깜빡임이 자꾸 아팠습니다. 이번에 응모한 여러 작가의 소설도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아름다운 문장으로 적혔을 텐데, 올 한 해는 부족한 제가 조금 더 아팠던가 봅니다.
아직도 당선이 꿈만 같습니다. 내일은 현실감이 좀 생길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 글이 부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잘 썼다는 칭찬이라기보다는 이제 쓰기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따뜻하게 어깨를 다독여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에 힘겨웠던 시간이 찬란해졌습니다.
△1981년 경북 안동시 출생 △동덕여대 응용화학과 졸업
노련한 문장, 입체적 인물, 생동감 있는 위트 돋보여
● 심사평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모두 네 편이다. ‘우리의 일’은 당면한 사회문제를 정돈된 문장으로 잘 풀어냈다. 지하철 역무원의 근무환경이나 라돈 침대 파문, 환경단체의 시위 같은 묵직한 주제를 레즈비언 서사와 목소리를 잃어 가는 갑상샘암 수술이라는 에피소드에 녹여서 재치 있고 차분하게 접근했다. 구청의 환경과에서 분뇨 처리와 정화조 관련 민원을 담당하는 디테일도 흥미롭다. 그러나 틀을 뛰어넘지 않고 안전하게 머문 느낌이었다.
‘우리, 집’은 오래된 폐가와 관련된 ‘존재들’을 하나씩 소환하며 3대에 걸친 삶의 이면을 조망한다.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이야기의 개연성과 구성력이 아쉬웠다.
‘개구리’는 에너지와 입심이 좋아서 가독성이 높은 소설이다. 인간들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적 등고선을 발견하는 통찰도 인상적이다. 개구리라는 상징을 기반으로 계급에 대한 질문을 파고드는 한편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 이야기를 덧붙여 가는 구성 방식에도 재치가 있다. 다만 직설적이고 거친 내레이션, 인물과 상황의 상투적 설정 등에서 다소 설득력이 약해졌다.
당선작은 ‘호모 헌드레드’다. 은퇴를 앞둔 부사장을 주인공으로 해서,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서의 노인의 삶뿐 아니라 디지털 사회의 도래와 함께 소외되는 직군 등 사회문제를 다뤘다. 사내 인물들의 권력구조에 따른 업무 루틴 같은 충실한 디테일이 소설에 리듬감을 준다. 내공이 엿보이는 노련한 문장, 비호감 인물들에 대한 입체적 해석, 안경 렌즈로 도자기를 만드는 비전의 발견 등이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어 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글을 이끌어가는 추진력은 위트이다. 그것이 이 소설을 생동감 있는 세태소설로 만들고 있다.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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