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청소기 호스를 타고 나온 바람이 탁구공을 흔들어 북소리를 내고,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과 고무 튜브로 흘러나온 공기 방울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진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2층 전시장 ‘스페이스 1’에 가면 레바논 출신 예술가 타렉 아투이(44)가 만든 독특한 소리의 세계, ‘더 레인’(비·The Rain)이 펼쳐진다.
이 세계는 북, 꽹과리 등 한국 전통 악기부터 청자, 옹기, 서양 악기와 일상 속 물건까지 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것들로 이뤄졌다. 비어 있어야 할 꽹과리 속에 물이 고이고, 북을 쳐야 할 채는 청자 파편을 문지르는 등 평소라면 섞이지 않을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새로운 소리를 만든다.
아투이는 “전시장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빗소리로, 또 오브제 하나하나는 빗방울 소리로 들리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더 레인’이라는 제목은 작업실에서 작곡하고 악기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빗소리가 떠올라 붙인 제목이다. 전시장 속 여러 오브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차를 두고 저절로 소리를 내, 마치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 있는 듯하다.
2019년부터 아트선재센터와 협력해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며 신작을 만든 아투이는 “타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그것을 한국에서 발전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장구와 북을 만드는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서인석 악기장을 만나며 타악기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 악기장과 북피, 틀 등 북을 구성하는 요소를 재해석할 방법을 논의하면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또 정희창 옹기장, 도예가 강지향 등과 협업해 도자기, 한지, 짚 등의 재료를 사용했다. 이러한 제작 과정과 결과물은 서로 다른 문화가 섞여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연결 고리를 보여준다.
작곡가이자 DJ로도 활동하는 아투이는 기성 음악으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찾는 데 집중해왔다. 세계의 전통 악기와 지역 음악사를 인류학적 방법론으로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악기와 도구를 제작해 소리를 만든다. 이런 작업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2016년), 프랑스 파리 루이뷔통 파운데이션(2015년) 등에서 선보인 그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0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참가한 적은 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그때는 가방 하나만 들고 사운드 퍼포먼스를 하러 다녔는데, 당시 카셀 도쿠멘타 감독의 눈에 띄어 최근 10여 년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여러 미술관에서 전시를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1일까지. 5000∼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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