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영감 한 스푼’은 이번 주에 볼 만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연을 보는 여러 가지 시선의 의미
아시아 젊은 컬렉터가 주목하는 일본 출신 작가 유이치 히라코(42)의 작품을 2월 4일까지 서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 공간 ‘스페이스K 서울’(서울 강서구)에서 열리는 개인전 ‘여행’을 통해서인데요. 작가의 회화 조각 설치 등 작품 30여 점이 소개됩니다.
2013년 일본 신진 예술가를 위한 VOCA(Vision of Contemporary Art)상을 받고, 같은 해 도쿄도미술관 단체전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관 그룹전에 참가한 히라코는 2022년 도쿄 네리마 구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해외 미술관 개인전은 이번 스페이스K 서울이 처음입니다.
사람의 몸에 나무 형태의 머리를 달고 있는 ‘트리맨’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도 ‘트리맨’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일본 작가 특유의 감미로운 색감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판타지 속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줍니다.
특히 주로 자연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작가는 이 계기를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일화로 설명합니다.
“자연이 풍부한 오카야마에서 태어나 자랐다가 대학시절 런던으로 이사해 도시 생활을 4~5년간 경험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장소와 많은 차이를 느끼고 있을 때였죠. 그때 리젠트 파크에 함께 간 친구가 ‘역시 자연이 좋아’라고 하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걸렸어요. (작가의 눈에 리젠트 파크는 도심 속 공원이지, 자연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생각한 자연과 친구가 생각한 자연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죠. 또 저와 친구뿐 아니라 사람들마다 자연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자연은 항상 존재했지만 그것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15년 간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트리맨’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공통 언어처럼 갖고 있는 자연에 대한 감각을 표현하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을 보고 예쁘다고 하고, 자연 속에서 힐링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런 감각들을 자연을 처음으로 만지고 경험하는 사람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비슷한 감각을 갖게 되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지만 신기한 상황이라고 생각해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전시장 가장 깊은 곳에는 폭 10m, 높이 3m 대작 ‘여행’이 눈길을 끄는데요. 4개로 분할된 화면에는 왼쪽부터 씨앗이 경계를 넘어 여행하고, 서로 다른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오른쪽 마지막 장면에는 찌르레기 떼가 그려져 있는데요. 이 찌르레기는 일본 도심에서 자주 발견되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찌르레기는 인간과 공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놓여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며 “인간 사회에서도 자연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중간적 존재로서 그려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전시장 바깥에 나무로 만든 핀볼 머신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입니다. 스페이스K는 미술관의 위치 특성상 주변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데, 전시장까지 들어가지 않고 커피만 마시는 관객도 많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작가가 미술관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을 위해 마련한 장치입니다.
“미술관이 일반인의 입장에서 일상적으로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미술을 접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가로서 더 많은 분들이 미술을 접하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핀볼 머신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핀볼 머신 안에는 제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트리맨)의 작은 피규어가 있습니다. 그 피규어를 여러분이 집에 놓고 보면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전시 정보 유이치 히라코 개인전, ‘여행’ 스페이스K 서울 2024년 2월 4일까지
윤형근의 색면 추상을 볼 수 있는 전시
윤형근(1928~2007) 작가는 직물이나 한지에 먹색을 번지게 한 무채색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가 1969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했을 때는 강한 색채가 눈에 띄는 색면 추상화를 출품했었는데요.
이 작품은 작가가 옆에 서 있는 사진으로만 남아있었는데, 2021년 유족이 작업실을 정리하며 이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69-E8’(1969)을 과천관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는 1920~1970년대 한국 추상미술가 47명의 기하학적 추상 작품 150여 점, 아카이브 100여 점을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기하학적 추상은 1920~30년대에 등장해 1960~70년대에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됐습니다. 김환기, 유영국, 류경채, 이준 등 1세대 추상미술가와 이기원 전성우 하인두 등 2세대 추상미술가들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특히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건축이나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했다는 점을 이 전시는 주목합니다. 이를테면 1930년대 단성사와 조선극장에서 제작한 영화 주보, 시사 종합지의 표지나 시인 이상이 디자인한 잡지 ‘중성’(1929)의 표지를 함께 볼 수 있는데요
또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해 1957년 한국에서 결성된 건축가, 디자이너 연합 그룹 ‘신조형파’의 활동상과 전시 출품작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그룹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미술은 합리적인 기준과 질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산업 생산품에도 적용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이상도 품었죠.
1960년대에는 청년 미술로서 등장한 기하학적 추상 작품들을 조명합니다. 이승조 작가가 1970년 ‘제4회 오리진’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50여 년 만에 다시 공개되고, 1969년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하는 장면이 생중계된 역사적 사건과 미술과의 관련성도 돌아봅니다.
📌전시 정보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2 전시실 및 중앙홀 2024년 5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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