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으로 남기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글감이 되는 인생의 자료를 잘 모아두어야 합니다. 글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을 내·손·자(내 손으로 자서전 쓰기) 클럽이 소개합니다.
지난해 말 동아닷컴 디지털뉴스본부로 한 권의 특별한 ‘일대기’가 배달됐다. ‘최초는 두렵지 않다-구지은, 아버지 구자학을 기록하다’라는 제목의 책은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이 구자학 명예회장의 1주기를 맞아 펴낸 아버지의 인생 기록이다. 막내딸인 구 부회장은 서문에서 “1주기를 맞아 아버지의 기록을 찾고 정리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비로소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렸다”고 고백했다.
책 속에는 LG그룹 창업주 가문에서 태어나 삼성그룹 창업주 가문의 사위가 되고, 두 그룹의 다양한 회사를 거치며 한국 경제의 부흥을 주도한 구 명예회장의 삶이 가업을 이어받은 구 회장의 애정어린 시선으로 펼쳐진다. 담백한 글과 다량의 사진으로 구성돼 단숨에 술술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자원도, 돈도, 기술도 없던 시절 아이디어와 의지만으로 맨땅을 일군” 한 기업가의 일대기는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대기의 구성상 이 책에는 특별한 부분이 있다. 주인공의 일생을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과 교직해 만든 연표다. 서문 뒤에 붙은 네 쪽짜리 ‘구자학 타임라인 in history’은 구 명예회장이 태어난 1930년부터 별세한 2022년까지를 가로축으로 위쪽에는 개인의 일생이, 아래쪽에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 장면들이 기록됐다. “1980-럭키 대표이사 사장(개인), 1981-수출 200억 달러 돌파(역사), 1986-금성사 대표이사 사장(개인)-서울아시안게임(역사), 1999-아워홈 회장(개인)-반도체 빅딜(역사)’ 등등으로 이어지는 개인과 역사의 장단은 해방과 분단, 전쟁의 폐허 위에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큰 흐름을 묵묵히 걸어나간 한 기업가의 일생을 드러낸다.
개인의 일생을 역사와 교직한 일대기의 형태를 강조한 것은 ‘내손자 3회’에서 소개한 미국의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언론인이자 지식인인 고 다치바나 다카시 역시 생전인 2013년 펴낸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2018, 바다출판사)’의 부제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삶을 기록하는 방법’이라고 달았다. 한 개인의 삶은 그가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 즉 역사와 교직될 때 더 가치가 커진다고 본 점에서 니어링과 같다.
그는 언론계를 은퇴한 뒤인 2008년 일본 릿쿄대가 개설한 ‘세컨 스테이지 대학교’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시니어 학생들을 상대로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라는 강의를 진행했다. ‘자기 역사를 실제로 쓰는’ 즉, 자서전을 쓰도록 코칭하는 실무 교육이었다. 그는 교수로서의 경험과 결과물을 모아 묶은 이 책의 서문에서 강의 제목에 ‘현대사 속에서’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부터 써내려갈 자기 역사에서 단순히 ‘성공과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대가 어떠한 시대였는지를 의식하면서 자기 역사를 써보도록 하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자기 역사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과 다르지 않지만,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동시대의 구체적인 역사를 실마리로 삼아 돌이켜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사라고 할 수 있다(9페이지).”
개인의 삶을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되짚어 본다는 의미도 크지만 자서전을 쉽게 쓰는 효과적인 하나의 방법론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기억은 연상 기억 방식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조그마한 실마리만 제공해도 바로 되살아나는 법이다. 기억을 되살리는 가장 좋은 실마리는 그때그때 일어났던 커다란 사회적 사건”이라고 했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자기 역사를 쓸 때 가장 먼저 요구한 작업이 ‘자기 역사 연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이 연표에는 반드시 시대배경을 별도의 틀로 만들어 기입하도록 했다.
구 부회장이 이 책을 참고했는지는 모르나, 제대로 정확하게 다치바나의 지도를 따른 셈이다. 다만 구회장도 아버지의 자서전을 쓰는 과정에 좋은 일대기를 쓰기 위한 생전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하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서문에서 “그간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당신을 보내는 상가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이 책을 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책을 마치는 ‘감사의 글’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살고자 했던 분이라 당신 스스로 남긴 기록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분들의 증언을 들어야 했다. 어떤 일은 너무 오랜 기억이라 흐릿했고, 기억을 가진 분들이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기록될만한 삶을 살라. 그리고 그 삶을 미리미리 기록으로 남기라’는 충고가 새삼 강조되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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