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회차별 등장하는 소제목
문학-예술가 명언 등 출처 다양
원작 다시 감상하니 색다른 재미
◇에어리얼: 복원본/실비아 플라스 지음·진은영 옮김/280쪽·1만7000원·엘리
15일(현지 시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8관왕에 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의 10개 에피소드엔 명언에서 모티브를 받은 시적인 소제목이 붙어 있다. 특히 3화 소제목 ‘내 속엔 울음이 산다’는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시 ‘느릅나무’의 한 구절을 그대로 가져왔다. 옛 연인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 주인공 대니(스티븐 연)의 모습이 나오는 3화 내용과 소제목이 절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에어리얼: 복원본’의 책장을 열었다.
‘에어리얼’은 1963년 실비아 플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인 1965년에 처음 출간돼 세계적 찬사를 받은 시집이다. 하지만 편집 과정에서 시가 수십 편 사라지고, 시의 배열 순서가 바뀌어 작가의 본래 의도와 멀어졌다. ‘에어리얼: 복원본’은 시인이 세상을 떠날 때의 책상 위에 놓인 검은색 공책에 놓인 원고를 그대로 살린 번역본이다.
“내 속에는 울음이 살고 있다./밤마다 울음은 날개를 퍼덕이며 나와/자신의 갈고리들로, 사랑할 무언가를 찾는다.”(시 ‘느릅나무’ 중)
플라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바친 시다. ‘성난 사람들’ 3화의 소제목은 이 구절에서 따왔다. ‘I am inhabited by a cry’라는 원문을 넷플릭스는 ‘내 속엔 울음이 산다’, ‘에어리얼: 복원본’은 ‘내 속에는 울음이 살고 있다’로 번역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마치 울음이 집을 짓고 사는 것처럼 묘사하는 문장에서 플라스의 고통이 여실히 느껴진다. 특히 감정인 울음을 날개를 퍼덕이고 갈고리를 뻗친다며 생명체처럼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시집에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한 시들만 담겨 있는 건 아니다. 시인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당신은 모를 거야, 얼마나 자유로운지”(시 ‘튤립’ 중)처럼 자유를 노래한다. “사랑이여, 세상은/갑자기 색깔을 바꾸고, 바꾼다”(시 ‘11월의 편지’ 중)처럼 애정이 담긴 시도 있다. 특히 시집의 첫 단어는 ‘사랑’, 마지막 단어는 ‘봄’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바람기가 가득한 남편과 이혼한 불우한 인생이지만 플라스는 적어도 시집의 시작과 끝에선 희망을 찾으려 한 것이다.
‘성난 사람들’ 1화 소제목 ‘새들은 노래하는 게 아니야, 고통에 울부짖는 거지’는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82)의 말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현대인들의 고통을 다룬 작품의 시작을 알린다. “깨달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어둠을 알아차림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라는 스위스 정신과 의사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문장에서 따온 10화 소제목 ‘빛의 형상’은 화해(?)를 모색하는 작품의 결말을 암시한다. ‘성난 사람들’ 정주행 시청을 끝낸 이들이라면 소제목을 곱씹어보며 해석의 묘미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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