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 현실 임신 이야기… 몸으로 직접 겪었던 고충 풀어내
인류 재생산은 여성만의 몫 아냐… 편견 벗어나야 저출산 극복 가능
◇출산의 배신/오지의 지음·박한선 감수/250쪽·1만7000원·에이도스
“애를 낳는 게 이렇다는 걸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줬을까요.”
산부인과 의사인 저자는 출산 후 만난 산모들로부터 늘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누구보다 임신 관련 지식이 풍부한 그 역시 아이를 가진 이후 겪은 신체 변화에 놀란다. 임신선부터 튼살, 탈모에 돌아오지 않는 몸매까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외형의 변화는 일반적인 미적 관점에서는 부정적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출산의 배신’은 외형 변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태아가 비집고 들어온 신체 변화는 “9개월짜리 세입자의 엄청나게 요란한 리모델링”에 견줄 만하다. 자궁 용량이 최대 1000배까지 증가하면서 주변의 모든 장기가 영향을 받는다. 신진대사와 혈당 조절 기준도 태아를 위해 변하고, 늘어난 자궁으로 인해 폐의 부피마저 달라진다.
이 책은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시각에 초점을 맞춰 임신, 수유, 양육 등 출산의 모든 과정을 풀어낸다. 사적인 영역으로만 여겨져 온 임신부의 고충이나 개인적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것. 저자는 자신의 출산 경험에 의학적 관점을 함께 제시하며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임신 중 몸의 변화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가 늘면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썼다.
임신의 예측 불가능성도 여성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임신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할 때 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저자는 이를 테이크아웃 커피점에 비유하는데 “삼신할미의 카페는 영업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언제 여닫는지도 알 수가 없어 방문할 때마다 허탕을 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우리는 유산이나 난임 등의 문제에 맞닥뜨리면 “왜 하필 내가?”와 같은 의문을 갖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불확실성을 견디되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어머니다움이 지나치게 이상화된 ‘모성 신화’ 역시 출산의 배신 중 하나다. 어머니는 지극히 헌신적이고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는 모성 신화는 임산부 입장에서 숨이 막힐 수 있다. 인간도 다른 동물들처럼 임신의 생물학적 책임을 거의 대부분 여성이 짊어진다. 그러나 태어난 자식을 여성에게만 전적으로 떠넘기지 않고 아빠가 나서도록 육아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저자는 출산과 양육이 “숭고한 모성의 완성도, 몸과 마음을 희생하는 비극도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가 심각한 요즘 출산에 대한 신화와 편견에서 벗어나야 젊은층이 출산을 꺼리는 원인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솔한 이야기는 저출산 정책 보고서 이상의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친모는 여전히 아기에게 최선의 옵션이지만, 인류 재생산 연대기라는 장편영화는 엄마의 ‘원맨쇼’가 아니다”라는 지적은 남성들도 곱씹을 만한 내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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