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선한 아메리카’를 기억하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7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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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서경식 지음·최재혁 옮김/264쪽·1만8000원·반비

‘디아스포라 기행’ ‘나의 서양미술 순례’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로 국내에서 사랑받은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의 유작이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미국에 대한 사유를 날카로운 솜씨로 벼려 놓았다. 사유의 중심에는 음악과 미술이 있다.

1951년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저자의 삶은 두 형(서승, 서준식)이 1971년 ‘재일조선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형들은 박정희 정권에서 간첩으로 몰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됐다. 저자는 형들의 구명을 위해 1985년 미국으로 향한다. 미 국무부 인권국과 현지 인권단체를 찾는 한편 한국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했다. 이후 두 형은 석방됐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인권과 디아스포라에 대한 문필 활동을 이어갔다.

저자는 1980년대에 자신이 경험한 미국은 ‘선한 아메리카’였다고 말한다. 세계 각지에서 핍박받던 이들이 몰려와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은 그들을 도울 능력과 자신감을 갖춘 나라였다. 미술사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당시 구명 활동 도중에도 짬을 내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 좋은 미술 작품과 조우하는 것이 나 자신의 생존에 필요했다”고 돌아봤다. 그때 봤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수틴의 초상’, 디에고 리베라의 ‘디트로이트 산업’은 인생을 통틀어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후 반지성적이고 오만한 모습이 되어가는 미국이 실망스러웠다고 지적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불관용이 만연한 일종의 파시즘이 번지고 있음을 크게 우려했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해 12월 별세 직전까지 펜을 놓지 않으며 이렇게 밝혔다.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기행’의 한 페이지다.”

#선한 아메리카#나의 미국 인문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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