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후보 이금이 작가
세계적 아동문학상… 최종후보 6명
1984년 등단해 작품 50여 편 집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담아
“어려운 글이 아니라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전해진 게 아닐까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금이 작가(62)는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소감을 묻자 수줍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그는 “40년 동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글을 쓰다 보니 괜히 거창한 표현은 하지 않는다”며 “2020년 안데르센상 글 부문 1차 후보에 들었으나 최종 후보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이번 소식을 듣고 얼떨떨하다”고 했다.
그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가 최근 발표한 올해의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 후보 6명에 포함됐다. 안데르센상은 덴마크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세계적 권위의 아동문학상이다. 이수지 작가가 202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을 수상했다. 하지만 1956년 상 제정 이래 한국인 글 작가가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1984년 새벗문학상에 동화 ‘영구랑 흑구랑’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등단해 작품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지 않아서가 아닌지 스스로 되묻곤 했단다. 그는 “글 쓰는 데 대학 공부가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어 대학에 가진 않았지만, 작가가 된 후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가자 나도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제가 하고 싶은 건 ‘학벌 세탁’이었던 것 같아요. 한때 다른 대학에서 국문학과 석·박사 과정을 공부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글 쓸 시간이 사라진다는 걸 깨닫고 공부를 포기했죠. 따로 문학 공부를 안 한 덕에 어린이들을 위한 쉬운 문장이 탄생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50여 편에 이르는 그의 작품 이면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1999년·밤티)는 가족 결손 문제를 다루고, 동화 ‘망나니 공주처럼’(2020년)은 고정된 성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성폭력 문제를 파고든 청소년소설 ‘유진과 유진’(2004년)처럼 묵직한 작품도 있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청소년기에 겪은 고민을 담아 썼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에는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의 수다를 들으며 당시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으려 했다”며 “청소년은 어른이 쥐고 있는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이방인이자 어른과 아이 사이에 있는 경계인”이라고 했다.
특히 IBBY에 제출된 그의 대표작엔 일제강점기를 다룬 장편소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2016년·사계절), 하와이 이민 1세대가 등장하는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년·창비)이 포함됐다. 한국 역사의 질곡을 다루며 그의 작품세계가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학교, 학원만 오가는 한국 청소년들의 현재를 벗어나 과거의 한국 청소년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지부(KBBY), 한국문학번역원, ‘한국 문학 전도사’로 불리는 영미권 출판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의 도움이 없었다면 작품이 해외에 소개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 계획을 묻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동화 ‘밤티 마을’ 3부작은 인권 의식,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해 개정판을 3월에 냅니다. 또 일제강점기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여성이 주인공인 장편소설을 준비 중입니다. 4월 수상자가 발표되는 안데르센상에 휩쓸리기보단 창작에 집중할 겁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