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노인 일상 담은 시 ‘실버 센류’
감동-웃음으로 승화한 노년의 삶
2001년부터 당선 작품 88편 수록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지음·이지수 옮김/128쪽·1만3300원·포레스트북스
‘연명 치료/필요 없다 써놓고/매일 병원 다닌다’.
일본 미야기현에 사는 70세 남성 우루이치 다카미쓰 씨는 신간에 실린 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주위엔 삶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연명 치료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병원 문턱이 닳도록 자주 드나드는 자신의 이중성을 돌아본 것이다. 노인의 삶에 대한 풍자가 간결하게 녹아 있어 시를 읽은 뒤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일본 노인의 일상을 담은 이른바 ‘실버 센류’ 88수를 모은 시집이다. 센류(川柳)는 하이쿠(俳句)처럼 운을 가진 일본 고유의 시로 일본어 기준 5·7·5의 17개 글자로 이뤄져 있다. 신간은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일본 노인들을 대상으로 2001년부터 열고 있는 센류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들을 모았다. ‘연상이/내 취향인데/이제 없어’처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작품들이 매년 공모전에 약 1만 편씩 투고된다고 하니 문학에 대한 일본 노인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노인들은 늙음이란 일상을 주목한다. ‘환갑 맞이한/아이돌을 보고/늙음을 깨닫는다’, ‘‘연세가 많으셔서요’/그게 병명이냐/시골 의사여’라는 센류에선 일본 초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종이랑 펜/찾는 사이에/쓸 말 까먹네’, ‘세 시간이나/기다렸다 들은 병명/노환입니다’라는 고백에선 늙음에 대한 애환이 느껴진다. ‘혼자 사는 노인/가전제품 음성 안내에/대답을 한다’, ‘손주 목소리/부부 둘이서/수화기에 뺨을 맞댄다’는 고백에선 외로움도 묻어 나온다.
하지만 노인들은 마냥 한탄하지 않는다. ‘물 온도 괜찮냐고/자꾸 묻지 마라/나는 무사하다’고 당당히 외친다. ‘손을 잡는다/옛날에는 데이트/지금은 부축’, ‘분위기 보고/노망난 척해서/위기 넘긴다’며 노년의 삶을 웃음으로 승화한다. ‘두 사람의 연애담/처음 들은/장례식 날 밤’, ‘자동 응답기에 대고/천천히 말하라며/고함치는 아버지’처럼 자녀 시점에서 쓴 센류도 있어 젊은 독자도 읽을 만하다.
신간은 글자가 큼직하게 인쇄돼 있어 장년층 독자도 읽기 편하다. 매일 자식의 안부 전화를 기다리는 부모님께 “당당히 노년을 마주하라”며 선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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