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물리학 다룬 기초과학도서
근본 진리 탐구하는 색다른 재미
과학자 인간적 면모 함께 담아
◇불멸의 원자/이강영 지음/376쪽·1만8500원·사이언스북스
한국인들은 기초 과학이나 세상의 근본 원리 같은 뜬구름 잡는 주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그러나 막상 출판계에 발을 담가 보면 이런 말은 막연한 인상에서 나온 잘못된 편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근본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 서적이 오히려 큰 인기를 얻곤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인기를 끈 영국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의 ‘시간의 역사’(1988년·까치) 등이 그렇다. 한국인들이 현실적인 문제와 당장 돈 되는 일에 대한 관심이 들끓는 사회에 지쳐서일까. 잠시 숨을 돌리고 쉬고 싶을 때 오히려 진리의 맨 밑바탕을 살펴보는 기초 과학 도서에 이끌리는지도 모르겠다.
21세기에 한국 과학자가 쓴 과학 교양서로는 무슨 책을 꼽아 볼 수 있을까. 한국 출판 시장에서 성공한 정도로 보자면 ‘김상욱의 양자 공부’(2017년·사이언스북스), ‘빅뱅의 메아리’(2017년·마음산책)가 있다. 이에 더해 나는 이강영 경상국립대 물리교육과 교수가 2016년 펴낸 ‘불멸의 원자’를 꼽고 싶다. 입자물리학이라는 분야를 중심으로 과학의 좀 더 폭넓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기초 과학이란 무엇인지, 지식을 탐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넓게 조망하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불멸의 원자’는 과학 연구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화를 다룬다. 미국에 가면 테바트론(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의 원형가속기)이라고 하는 거대한 실험 장비가 있다. 프랑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과학실험장치인 거대강입자충돌기(LHC), 한국에는 원자핵 충돌을 일으키고 새로운 희소 원소를 찾는 중이온가속기 ‘라온’이 있다. 도대체 언뜻 들어서는 무엇에 쓰는 것인지도 잘 알 수 없는 이런 어마어마한 장비를 왜 만드는 것일까. 왜 나라들은 서로 더 큰 장비를 만들려고 경쟁하는 것일까. 우주에서 떨어진 이상한 신호를 발견하고 과학의 뿌리가 되는 이론을 재정비하게 된 사건, 원자력의 근원 등 다양한 사연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과학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내용도 넉넉히 곁들여져 있다. 천재 과학자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괴짜의 일화도 빠지지 않고 담겼다.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진짜 현실 속 삶에 대한 성찰도 풍부하다. 다만 책 초반부는 본격적인 현대 과학 실험에 대한 것이라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기초 과학 연구를 그냥 “천재들이나 하는 알 수 없는 일”로 여기는 수준이 아니라 과연 그런 연구를 누가, 어떻게, 왜 해 나가는지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책을 영혼의 양식이라고 한다면 ‘불멸의 원자’는 다양한 영양이 골고루 담긴 과학 교양서가 줄 수 있는 훌륭한 보양식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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