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앙투안,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지음·윤진 옮김/436쪽·3만5000원·문학동네
‘내가 글을 쓰려면 당신이 필요해… 내겐 당신의 편지만이 옷을 입혀줘. 나는 벌거벗은 느낌이고, 우편 수송기가 당신의 편지를 쏟아놓고 가면 온종일 화려한 실크를 걸치고 있지. 시종처럼, 기사처럼, 왕자처럼….’
1944년 1월 1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알제리에서 미국 뉴욕에 있는 연인 콘수엘로에게 보낸 편지다. 1930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생텍쥐페리가 비행 중 실종된 1944년까지 15년간 주고받은 편지 168통을 모은 책이 한국어로 출간됐다. 두 사람의 편지는 생텍쥐페리가 실종된 지 77년 만인 2021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왕자’를 쓴 문학가이자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와 화가·조각가였던 콘수엘로는 각자의 정체성과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부부였다. 생텍쥐페리가 비행사였기 때문에 자주 떨어져 있었고, 이 때문에 글로 주고받았던 사랑과 불안, 아쉬움과 간절함을 편지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어린 왕자’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콘수엘로가 생텍쥐페리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었는지가 드러난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콘수엘로의 역할은 그간 생텍쥐페리의 전기나 연구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그러나 편지를 보면 콘수엘로의 별명이 ‘오이풀’이었고 콘수엘로는 생텍쥐페리를 나무에 자주 비유했는데 이러한 표현은 ‘어린 왕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린 왕자’의 중심 주제인 장미꽃이 초반에는 오이풀 모양으로 그려지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린 왕자가 한 그루 나무가 쓰러지듯 서서히 쓰러진다고 묘사된다.
무엇보다 불확실한 사랑과 삶의 우여곡절을 버텨내는 데에는 두 사람이 상상력과 시로 만든 공통의 ‘영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이 책의 프랑스 편집자 알방 스리지에는 말한다. “당신을 피하면서 동시에 당신을 찾아다녔다”는 생텍쥐페리. 그렇게 오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연인, 삶의 ‘순수함’을 찾으려 애썼던 두 사람의 ‘영토’가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을 울리는 명작을 만들어냈음을 편지들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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