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환자 수술하고 치료한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의 저자
인간-생명에 대한 단상 풀어내
◇칼날 위의 삶: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마주한 죽음과 희망의 간극/라훌 잔디얼 지음·정지호 옮김/296쪽·1만8000원·심심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은 참담하다. 성형외과, 피부과가 즐비한 서울 압구정동과 달리 지방은 의사를 구할 수 없는 곳이 부지기수이고 부모들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다. 의대 지망생은 미어 터지는데, 필수의료 분야는 고사 직전. 고육책으로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하자, 의사들은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의가 수많은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하며 깨달은 경험을 담담히 풀어냈다. 서두에 언급한 의사의 사회적 사명이나 잘못된 의료 문제의 개선 같은 엄숙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또는 수술을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떠올리는 인간과 생명, 그리고 의사라는 존재에 대한 단상 같은 독백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저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의사라는 존재의 무거움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그들은 우리가 자신의 뇌와 배를 가르도록 허락한 유일한 존재이니 말이다.
‘“미안해요”라는 내 사과에 그는 “왜요”라고 답했다. 구식 타자기를 이용해 한 번에 한 키씩 누르는 속도로 1시간 동안 대화하며 우리는 소통했다. 환자는 그런 복잡한 수술을 나에게 부탁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마치 내가 슬픔을 정리하고, 자신의 결단을 이해해주기를 기다린다는 듯했다.’(10장 ‘삶―환자들이 가르쳐준 인생의 태도’ 중)
읽다 보면 유명 미국 드라마로 2005년부터 시작해 현재 시즌 20이 방영 중인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는 느낌도 든다.
드라마 내용과 일치하는 사례도 꽤 있다. 책 제목은 20년 넘게 1만5000명의 환자, 4000건이 넘는 수술을 해온 저자의 삶을 상징한 것. 저자는 전혀 생각조차 안 했겠지만, 힘들고 돈 안 되는 분야를 외면하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풍자하는 것 같아 섬뜩하기도 하다. 원제는 ‘Life on a Knife’s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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