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매력은 낮과 밤의 야누스적 모습이다.
낮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그대로다.
반면 밤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불빛을 쫓으면 된다.
“하루 일교차 36도! 어떻게 하지?”
갑자기 태국 방콕 여행이 정해지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겨울 한복판에 열대 지역을 찾는 여행자가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이다. 두꺼운 패딩을 여행 내내 들고 다닐 수는 없다. 공항 보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귀찮다. 해결책은 가을에 입는 얇은 옷 여러 벌을 껴입는 것이었다. 기내 탑승용 캐리어에 반팔 티셔츠 3장, 여름용 바지 2개, 반바지 2개, 수영복과 날짜별로 갈아입을 속옷 등을 채웠다.
인천에서 방콕까지 6시간 거리, 비행기를 타고 가며 20년 만에 다시 찾은 방콕을 공부했다. 방콕은 여전히 세계 여행자의 사랑을 받는 도시였다. 세계적인 카드회사 마스터카드가 뽑은 2023년 여행객 상위 50개 도시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지난 한 해 무려 2278만 명이 찾았다. 2위와 3위에 오른 파리(1910만 명)와 런던(1909만 명)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4박 5일 일정. 오고 가는 시간을 빼면 온전히 방콕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사흘이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능력을 발휘해 ‘먹고(Kin)’ ‘즐기고(Sanuk)’ ‘휴식(Phakphon)’ 할 일들을 찾았다.
●오리지널을 먹다(Kin·낀)
태국은 미식의 나라이다. 미국 CNN 방송이 2017년 세계 각국 3만5000명을 대상으로 ‘세계 최고의 음식 50선’을 설문한 결과 상위 10선에 태국 요리가 무려 4개(똠얌꿍 팟타이 솜땀 마사만커리)가 포함됐을 정도다. 국내 TV 여행 프로그램이나 음식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태국 요리는 단골 소재다.
어디가 좋을까. 많은 여행 블로거나 유튜버들이 제각각 선정한 맛집이 차고 넘친다. 선택 장애가 느껴진다. 좀 더 공신력 있는 정보를 얻고자 태국정부관광청 서울사무소가 최근 발행한 ‘방콕·동부지역 가이드북 2024 개정판’(가이드북)을 찾았다.
302쪽 분량 가이드북에서 방콕 소개가 200쪽을 넘는다. 분량만큼이나 내용도 충실하다. 방콕 시내를 12개로 나눠 지역별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꼼꼼하게 소개했다. 전자책(www.visitthailand.or.kr/thai/?c=TravelLibrary/OtherData&uid=35993) 형태여서 스마트폰으로 볼 수도 있지만 용량이 커 노트북을 이용하는 게 낫다.
현지 가이드가 추천한 식당에는 최근 몇 년간 미슐랭가이드에 잇따라 오른 곳도 있었다. 젊은이가 많이 찾는 푸드코트 더 커몬스 통로나 숙소(스테이브리지 스위트 방콕 통로 호텔) 맞은편 젊은층을 겨냥한 세련된 외관을 자랑하는 식당 시윌라이 래디컬 클럽에서 먹는 음식 모두 현지 아니면 경험하기 어려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동안 서울에서 이따금 경험한 태국 요리들과도 달랐다. 현지의 신선한 재료와 현지인 손맛이 담긴 오리지널의 힘이다. ‘방콕에 있다’는 현장감이 주는 정서적인 영향도 포함된다.
남대문시장을 연상케 하는 짜뚜짝 주말시장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들도 향기와 맛이 근사했다. 시내 근사한 식당에 비해 적잖은 가격 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도 매우 뛰어났다. 한국 여행객들이 이곳을 필수 방문코스로 꼽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야누스의 매력을 즐기다(Sanuk·사눅)
도시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낮과 밤이 완전히 다른 야누스적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낮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그대로다. 역사와 문화, 현지인들의 정서를 이해할 때 더 많이 보이고 느껴진다. 이성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반면 밤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불빛을 쫓으면 된다. 낭만과 열정에 몸을 맡기는 감성의 시간이다. 세계 1위 관광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방콕 역시 야누스적 매력이 차고 넘쳤다.
낮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찾을 곳을 정해야 한다. 한낮이면 겨울철(11월∼이듬해 2월)이라도 섭씨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와의 전쟁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가이드북은 방콕을 12개 지역으로 나눴지만 현지 가이드는 지역별 근접성을 고려해 크게 올드시티-실론·사톤-시암-스쿰빗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둘러볼 것을 추천했다.
올드시티는 한강과 같은 짜오프라야강 주변 지역으로 카오산로드와 왕궁, 왓포, 왓아룬, 차이나타운 등이 몰려 있다. 서울로 치면 경복궁과 청계천, 인사동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특히 왕궁과 주변 지역은 이미 각종 TV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익숙했다. 하지만 실물이 주는 감동은 역시나 컸다. ‘30도가 훌쩍 넘는 낮에는 관람 도중 지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소리에 지레 겁먹고 파리 루브르박물관을 1시간 코스로 끝낸 ‘저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하지만 궁내에 들어선 순간 그런 계획은 무의미했다.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붐빈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왕궁 안에 있는 에메랄드 사원과 인근 왓포 사원의 압도적인 화려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스마트폰에 다 담지 못하는 감동이 안타까울 정도다.
방콕의 저녁은 한낮의 30도 넘는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기에 적합하다. 기온이 24∼26도로 떨어져 선선한 바람이 불어 산책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아시아티크 같은 야시장을 찾아도 좋고, 분위기 좋은 근사한 카페나 쇼핑몰에 들러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
세계 배낭여행자의 아지트이자, 한국 이태원 같은 곳으로 여겨지는 카오산로드는 저녁이면 제대로 걷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라이브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바와 펍에서는 세계의 거의 모든 인종을 만날 수 있다.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쉬자(Phakphon·팍펀)
세계 1위 관광 도시에 걸맞게 호텔 인프라도 넉넉하다. 5성급 호텔부터 가성비 뛰어난 숙박시설도 적잖다. 4박 5일 일정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은 호텔에서 얻었다. 가성비를 따지며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는 MZ세대에게 어쩌면 최적의 여행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울 밤중에도 섭씨 20도를 넘는 기온 덕에 방콕 시내 호텔 대부분은 중간층 또는 최고층에 수영장을 운영했다. 수영장에 몸을 담근 채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방콕 시내를 내려다보는 경험은 흔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장기 투숙객이 늘어나는 여행 추세에 맞춰 레지던스급 시설을 갖춘 곳도 많다.
기자가 묵은 스테이브리지 스위트 방콕 통로 호텔과 스테이브리지 스위트 방콕 스쿰빗 호텔이 그랬다. 투숙객이 이용할 수 있는 객실에 침대와 목욕시설, 소형 냉장고만 갖춘 일반 호텔과 달리 인덕션과 접시를 비롯해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식기 등이 고루 갖춰져 있었다. 건조 기능을 갖춘 세탁기도 빼놓을 수 없다. 건물 밖을 나서면 30분 이내 땀으로 흥건해지는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1시간을 돌렸더니 새 옷이 됐다. 여행 중 옷에서 나는 땀내를 참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태국 여행에서 마사지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타이 마사지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서울에서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 수를 합친 것만큼이나 많다. 길거리 곳곳에서 마사지숍이 눈에 띈다. 이용료는 천차만별이지만 1시간에 350밧(약 1만3000원)짜리 전신마사지도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동화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등으로 잘 알려진 덴마크 출신 세계적인 작가 한스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고 했다. 방콕 여행을 통해 충전한 태양 에너지로 아직 남은 겨울의 한기를 너끈하게 견뎌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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