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포를 돕는 비석 이 사진은 향자 보도한 바와 같이 사회를 위하여 무한한 고초와 분투하는 남편을 만나서 남이 겪지 못할 고생으로 간장을 녹이다가 몇천리 밖인 다른 나라에서 이 세상을 떠난 김구(金九)씨의 부인 최준례(崔遵禮) 여사의 무덤에 세운 빗돌이다. 이 비는 상해에 있는 동포들이 그의 사십 평생의 고적하고 간난한 경우를 불쌍히 여기어 넉넉지 못한 주머니를 털어 돈을 모아서 세운 것인데 조선어학자 김두봉(金枓奉)씨의 지은 순조선문의 비문으로 썼고 이 빗돌 뒤에 있는 늙은 부인은 그의 시어머니 곽씨(郭氏. 66)이요, 모자 쓴 남자는 그의 남편 김구(金九. 49)씨요, 오른편에 있는 아해는 큰 아들 김인(金仁, 5)이요, 왼편에 있는 아해는 그 둘째 아들 김신(金信, 2)이다. 늙은 시모, 어린 자손, 더욱 뜻을 이루지 못하고 표랑하는 남편을 두고 죽을 때에 그 부인의 눈이 어찌 차마 감기었으랴! 쓸쓸한 타향에 가족을 두고 외로히 누운 그에게 이 빗돌 만이 쓸쓸한 회포를 더욱 도울 뿐이다. |
백범 김구(白凡 金九)선생의 부인인 최준례(崔準禮)여사의 유해가 12일 서울 효창공원으로 옮겨져 백범선생과 합장된다. 백범선생기념사업회는 9일 백범 서거 50주기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맞아 1924년 중국 상하이에서 타계한 최여사를 백범과 함께 모시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편의 독립운동을 내조하다 1924년 궁핍한 생활로 생긴 영양실조에 지병인 폐병이 겹쳐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숨진 최여사가 남편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75년이 걸린 셈이다. 당시 상하이공동묘지에 묻혔던 최여사의 유해는 48년 서울 정릉동으로 옮겨졌다 82년에는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 개인 묘역으로 이장됐다. 이에 따라 최여사는 사후 세차례나 묘소를 옮긴 끝에 남편 곁에서 안식을 찾게 된 셈. 이에 앞서 9일에는 77년과 90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뒤에도 최여사와 함께 송릉리 묘역에 안장됐던 큰아들 김인(金仁)선생과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郭樂園)여사의 유해가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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