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하늘 아래 저 멀리 바람개비가 보인다. 언덕 위 뾰족한 기둥과 날개 사이로 태양이 머리를 내밀지만, 이내 옅은 구름 뒤로 수줍게 숨어버린다.
이른 아침, 제주시 조천읍에서 마주한 이 풍경은 모닥불의 ‘불멍’이나 파도가 주는 ‘물멍’만큼이나 아름답다. 바람을 전기로 바꿔주는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날개가 풍성한 ‘바람멍’을 선사하고 있다. 볼거리 많은 대표 관광지 제주도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인천, 강원, 부산, 목포 등 전국에서 풍력발전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제주도에서 이뤄지는 풍력발전은 의미가 남다르다.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 아래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는 제주도에 풍력발전은 현재 어떠한 에너지원보다 대량으로 깨끗한 전기를 생산할 방안이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제동목장에 3kW급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1975년 2월 27일을 기념해 한국풍력산업협회가 올해부터 매년 2월 27일을 한국 풍력의 날로 삼기도 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높은 산맥이 등줄기를 지탱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풍력발전은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에너지 생산 수단으로 평가된다. 바다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으로도 발전할 수 있어 화력발전이나 원자력 발전과는 달리 에너지원 구입 비용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에서 온실가스나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초원의 목장이나 어촌마을 등에도 풍력발전기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2022년 기준 전국 115곳의 발전단지에 777기의 풍력발전기가 운영돼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탈탄소를 위한 재생에너지 확보는 기업과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가 자연환경은 물론, 철강·조선업계 등 풍력발전과 밀접한 산업에서 전통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여온 것은 다행인 부분이다. 전국 지자체도 풍력발전을 미래 산업으로 점찍고 앞다퉈 경쟁하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거대한 세 개의 날개가 배경이 될 ‘인생샷 포인트’가 늘어난다는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마주하게 될 아름다운 ‘바람멍’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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