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의를 갓 마친 영국 청년이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멀리 떠난다. 그는 유럽대륙과 중동을 거쳐 남아프리카로 향하더니 이내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한다. 그러곤 호주와 동남아시아, 인도를 찍고 중국으로 향한다. 장장 6년에 걸쳐 75개국, 8만6000여 km를 자전거로 내달린 저자의 장구한 여정이다. 그 사이 자전거는 타이어 26개, 체인 14개, 페달 12세트를 갈아치워야 했다.
이 책은 런던 세인트토머스병원 응급의인 저자가 쓴 여행 에세이이자 의학 에세이다. 단순히 여행지에 대한 감상이나 고생기만 나열한 게 아니라, 의사로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이 그득 담겼다. 세계 각처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만난 병자들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치안이 불안하다며 초라한 행색의 그에게 다가와 에스코트를 자청한 경찰관, 아무 조건 없이 음식과 방을 내준 주민 등 풍경만큼 아름다운 사람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영국인으로서 서구의 제3세계 착취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1990년대 후반 탈레반이 하자라족을 고문하고 강간한 데 대해 서방 평론가들이 ‘부족 간 갈등’으로 간단히 정리하는 건 비겁하다는 것. 저자는 “그런 해석은 강대국들이 아프가니스탄 내 일부 세력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증오를 부추기고 분쟁을 격화한 문제를 슬쩍 피해 간다”고 썼다. 여행을 끝내고 병원에 돌아온 그가 의사의 역할은 단지 질병을 진단하는 게 아니라, 환자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데 있다고 언급하는 대목은 최근 의대 정원 갈등과 맞물려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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