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민터 개인전 서울서 열려
佛 80세 디자이너 그린 신작 등
몸의 일부 묘사한 작품 6점 선봬
주름진 입술 위 빨간 립스틱과 그 사이로 보이는 금박을 씌운 치아. 손가락에는 입술과 같은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미국의 예술가 마릴린 민터(사진)가 그린 작품 속 주인공은 바로 미셸 라미(80). 프랑스의 디자이너, 퍼포머, 사업가로 짙은 화장과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프랑스 문화계 유명 인사다. 최근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만난 민터는 “성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 든 얼굴을 찾고 싶어 그녀를 모델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민터가 여성의 입술을 클로즈업해 묘사한 신작 회화 ‘도금 시대(Gilded Age·2023년)’를 비롯해 주요 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이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6점의 회화를 볼 수 있는데 라미를 모델로 한 작품은 ‘미셸 라미’(2014년), ‘스위트 투스(Sweet Tooth·2023년)’ 등 3점이다.
다른 신작 ‘흰 연꽃(White Lotus)’은 필리핀 출신 20대 여성의 주근깨를 도드라지게 그렸다. 민터는 “주근깨가 아름다워 그림에 넣었는데, 그림 속 여자가 뷰티 모델 일을 하며 주근깨를 다 지워버렸다”며 웃었다. 민터는 피부의 주름이나 주근깨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숨기고 싶은 몸의 부분을 크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직접 보면 물에 젖은 듯 촉촉한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이는 민터가 작업하는 고유의 방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민터는 모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그 앞에 물을 뿌리거나 습기로 가득 찬 유리를 댄다. 그리고 이 유리 너머로 보이는 모델의 모습을 그린다. 여기에 라미의 초상 같은 작품은 투명한 젤을 거침없이 발라 유리 위로 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독특한 것은 대부분의 그림을 캔버스가 아닌 알루미늄 패널 위에 그렸다는 점이다. 금속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묻자 민터는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80년대에 캔버스 위에 에나멜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고 부서지는 것을 봤다”며 “내 그림은 그렇게 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민터의 회화들은 겉모습은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배경은 금속처럼 단단하고 영원히 박제될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지금은 없어진 그림 속 여성의 주근깨가 그림 속에선 물감으로 영원히 간직되는 것처럼 말이다. 손엠마 리만머핀 서울 디렉터는 “민터의 회화는 실제로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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