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한국식 ‘대단지아파트’ 원형을 파헤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6일 01시 40분


◇마포주공아파트/박철수 지음/350쪽·2만5000원·마티

1961년 5월 28일 대한주택영단(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에 장동운 이사장이 취임한다. 그는 같은 해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의 주요 인물이었다. 취임과 동시에 장동운은 서울 안에 고층 단지식 아파트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운다.

군부는 2년 뒤 민정 이양을 약속했고, 선거에서 정권을 유지하려면 서울 시민들에게 새로운 정치 세력의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한국 아파트단지의 원형이라 불리는 ‘마포주공아파트 체제’는 1970년대 후반에 완성됐고, 그 후 50년 넘게 한국의 주거 문화생활을 점령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마포주공아파트 체제의 생성 과정과 구조를 밝히고 있다.

마포주공아파트 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면 지금의 아파트 문화를 만드는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최종 준공이 이뤄진 1964년에는 임대주택이었던 마포주공아파트를 1967년 대한주택공사가 자금난을 겪으면서 분양하기로 결정된 순간이다. 이는 한국의 주택 공급과 아파트의 역사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정부 주도의 집합 주택은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했는데, 19세기 말부터 예외 없이 모두 임대 주택이었다. 공공 주택을 통해 시장의 안정과 도시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가 주택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아파트는 ‘분양’ 방식이 도입되며 여러 기반 시설까지 입주자의 권리이자 책임으로 넘겨졌다. 단지 내 도로, 놀이터, 공원 등은 입주자가 부담하고 정부는 단지까지 이어지는 도로만 건설하면 됐다. 정부 예산은 없는데 주택이 압도적으로 부족해 단기간에 대량 공급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도시의 공공 기능, 개발 비용을 사적으로 부담하게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낡은 체제로는 도시의 사유화와 계급화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진단한다.

책은 한국이 만든 현대성(modernity)에 주목하는 시리즈의 첫 책이다. 2021년 ‘한국주택 유전자’를 출간하고 학계와 출판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2023년 2월 세상을 떠난 박철수 교수의 유작이기도 하다. 와병 중 집필한 원고를 출판사가 인계받아 사후 편집을 거쳐 출간했다.

#대단지아파트#대한주택영단#마포주공아파트#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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