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사후 애플의 경영방식 조명
기업 내부 사정 흥미진진하게 풀어
“잡스 취지와 멀어지고 있어” 지적
◇애프터 스티브 잡스/트립 미클 지음·이진원 옮김/612쪽·3만5000원·더퀘스트
2011년 10월 4일 애플의 디자인 총괄 수석부사장 조너선 아이브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집에 들어섰다. 췌장암에 걸린 잡스의 얼굴은 수척했다. 두 다리는 뻣뻣한 나뭇가지처럼 말라 있었다.
같은 시간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본사에서 신제품 ‘아이폰 4S’를 공개했다.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아이브와 쿡은 야심작 아이폰 4S의 실패에 대해 상의할 경황이 없었다. 다음 날인 5일 잡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잡스 사후 아이브와 쿡이 애플을 이끈 과정을 조명한 경제경영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가 4년간 애플 전·현직 임직원 200여 명을 취재해 썼다. 잡스를 다룬 전기 ‘스티브 잡스’(2011년·민음사)처럼 기업의 속살을 인간사로 풀어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아이브를 창의력 가득한 ‘예술가’로, 쿡을 사안을 꼼꼼히 챙기는 ‘운영자’로 정의한다. 이런 성향 차이 탓에 두 사람의 동거는 불편했다. 올 2월 출시된 확장현실(XR) 기기 ‘비전 프로’를 둘러싼 견해차가 대표적이다. 아이브는 멀리 떨어진 가족을 잇는 소통의 기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쿡은 게임과 영화를 즐기는 미디어 기기로 시장에 내놓았다. 현실세계를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제품을 팔아야 매출이 늘 거라는 판단에서다.
갈등이 폭발하지는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무적으로 대했을 뿐이다. 결국 아이브가 2019년 애플을 퇴사할 때, 쿡은 아이브를 붙잡지 않았다. 퇴사 후 애플과 맺은 디자인 컨설팅 계약이 2022년 중단됐을 때 아이브는 서운함을 드러냈다. 애플의 혁신적 디자인을 이끈 아이브가 떠난 뒤에도 애플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3조 달러(약 4043조 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애플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올 초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빼앗겼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투자를 망설인 데 따른 것. 저자는 쿡이 이끄는 애플의 성공 여부를 섣불리 예단하지 않는다. 다만 “애플은 어떻게 영혼을 잃었나”라는 말로 아이브가 떠난 뒤 애플이 잡스의 창업 취지와는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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