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들의 공연을 보고 쓴 한시를 연희시(演戲詩)라고 부른다. 조선 후기 신위(申緯·1769∼1845)는 연희를 보고 다음 시를 남겼다.
전체 12수로 이루어진 이 연작시엔 당대의 유명 광대들이 공연한 각종 연희가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특히 ‘춘향가’를 부르는 창자의 모습과 인산인해를 이룬 구경꾼들의 환호가 인상적이다. 시인은 소리꾼들의 공연이 얼마나 좋았던지 고수관,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김용운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기까지 했다(다섯 번째 수). 위 시는 정처 없이 떠도는 광대들의 처지와 공연이 끝난 뒤의 정경에 주목하고 있어 이채롭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유랑극단’(1975년)에서도 떠돌이 공연단 배우들의 인생유전이 그려진다. 영화 속 배우들의 이름은 모두 그리스 비극 속 주인공들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의 등장인물처럼 아버지의 이름은 아가멤논, 엄마는 클뤼타이메스트라, 딸은 엘렉트라, 아들은 오레스테스, 그리고 아내의 정부는 아이기스토스다. 영화 속 아가멤논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반정부 분자로 밀고돼 죽고, 오레스테스는 정부와 어머니를 연극 공연 중에 총으로 쏴 복수하지만 좌익 게릴라 활동을 한 죄로 정부군에 처형된다. 감독은 배우들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1939년부터 1952년까지 좌익과 파시스트가 대립한 그리스 현대사의 질곡을 드러낸다. 영화에서도 한시 속 이도령과 춘향처럼 신분을 뛰어넘은 애절한 사랑을 다룬 ‘양치기 처녀 골포’란 연극이 공연된다.
시인은 위 시에서 당시 천대받던 광대들에게 온정적 시선을 보냈다. 첫 구의 ‘간살(看殺)’이란 표현은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요절한 진(晉)나라 위개(衛玠)의 일화에서 온 말이다(世說新語 ‘容止’). 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송나라 소식(蘇軾)도 해남도(海南島) 유배에서 돌아온 자신을 보러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죽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聞見後録 권20). 시인은 구경꾼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고통받는 광대들의 처지를 동정하는 한편, 시끌벅적한 공연 뒤 허무에 가까운 정적의 상황을 포착했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도 유랑극단이 이리저리 떠도는 장면을 보여주고 그들이 떠난 뒤 텅빈 공간의 정적을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시에서도 떠돌이 광대들이 떠나고 난 고요한 뜨락엔 꾀꼬리와 제비 소리만 들려올 따름이다. 시인은 광대들의 인생유전과 공연 뒤의 정적을 통해 삶의 허무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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