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 25~27일 ‘사자의 서’… 김종덕 예술감독 취임후 첫 작품
망자 역 맡은 30대 두 무용수
“내 춤에 대해 다시 반성하게 돼”
“불같이 살수록 죽음 더 짙어져”
죽음 뒤의 세상은 증명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 인간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사후 세계의 모습을 조명한 신작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립무용단이 이달 25∼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리는 ‘사자의 서’가 바로 그 작품이다.
작품은 죽음 후 망자가 겪는 49일간의 여정을 ‘의식의 바다’ ‘상념의 바다’ ‘고요의 바다’ 등 3장에 걸쳐 풀어낸다. 지난해 4월 취임한 김종덕 예술감독이 불교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영감을 받아 처음 무대에 올리는 작품. 주역인 망자 역을 맡은 무용수 조용진 씨(39)와 최호종 씨(30)를 8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삶과 죽음을 표현하는 것은 베테랑 무용수에게도 쉽지 않은 일. 30대로 ‘한창’ 때인 무용수들이 한바탕 죽음의 춤사위를 추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최 씨는 “삶에 대한 미련을 하염없이 표현하고 나면 후련함을 느낀다”며 “춤이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기준에 못 미치는 나를 매일 후회하며 살기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햇수로 28년째 춤을 추고 있는 조 씨는 이렇게 답했다. “제 춤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게 됐어요. 내가 더 나은 무용수가 됐는지 연말마다 반추하곤 하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을 오가며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죠. 이처럼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되돌아볼 수 있길 바랍니다.”
조 씨는 1장에서 죽음을 맞은 망자를, 이어 최 씨가 삶을 돌아보는 망자를 연기한다. 두 망자의 온도 차는 극명하다. 최 씨는 “불같이 살수록 죽음의 그림자가 더 짙어진다고 봤다”며 “생전 가장 열정적이던 순간을 2장에서 파노라마처럼 표현해 삶과 죽음을 대비시키려 한다”고 했다. 반대로 조 씨는 부정과 분노, 타협이 응축돼 끝내 차분해진 상태를 표현한다. 그는 “비교적 느리고 힘 있는 동작으로 죽음 앞 모든 걸 내려놓은 마음을 담아낼 예정”이라고 했다.
무대 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 무용에 기반한 작품이지만 역동적 춤사위, 미니멀한 무대 등으로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새하얀 무대는 조각조각 나뉘고 회전하며 이승과 저승이 중첩된 공간을 연출한다. 그 위에서 빠르고 역동적으로 이뤄지는 남성 군무 ‘일상’은 두 사람이 꼽은 가장 현대적인 장면이다. 조 씨는 “한국무용은 몸을 감아내는 동작이 많아 힘을 표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전쟁 같은 일상을 역동감 있게 표현한 군무에선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예술감독이 “마치 도화지 같다”고 평한 두 사람은 창작 과정에 참여해 자신만의 색깔도 더했다. 최 씨는 “어렸을 땐 느리게 가던 시간이 나이가 들면서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느낀다”며 “망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그 변화의 흐름을 춤의 강약 및 완급 조절로 표현하려 한다”고 했다. 조 씨는 “1장과 2장이 동일 인물의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호종 씨와 나의 동작 일부가 겹치게끔 했다”고 했다.
조 씨와 최 씨는 국립무용단에 각각 2011년, 2017년 입단했다. 최 씨는 늦깎이로 무용을 시작한 고교 3학년 시절을 회상하며 “(용진)선배가 출연한 무용단 공연을 보고 무용수라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멋쩍은 듯 손사래를 치던 조 씨는 “호종 씨의 집요함을 존경한다. 동작 하나를 백 번, 천 번 반복해 완성해낸다”며 후배를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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