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죽음 가까이서 본 저자
법의학자 과학적 관점 너머
죽음에 대한 온갖 사유 풀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유성호 지음/280쪽·1만8000원·21세기북스
큰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부서진 차 안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얼마 후 사고로 죽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생명보험을 걸어 놓은 흔적이 발견된다. 혹시 이 사람은 사고의 희생자가 아니라 살인 범죄의 희생자였던 건 아닐까. 여러 의심이 드는 사고이지만, 사고 발생 시점은 이미 한참 지났다. 이럴 때 추리 소설 속 명탐정이라면 어떻게 할까.
강한 전압의 전기를 내뿜어 전자를 날려 보내면, 그 전자가 금속판을 때리면서 아주 센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빛은 매우 세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현대의 전자 회로를 사용하면 이런 센 빛을 어렵잖게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이 빛에는 ‘X선’이라는 익숙한 이름도 붙어 있다. 이 X선 기술을 이용하면 사람의 몸속에 있는 목뼈 모양을 정확하게 사진으로 만들어 낼 수가 있다.
과학자들은 해당 사고의 피해자 목뼈 X선 사진을 살펴본다. 그 결과 피해자의 뼈가 별로 어긋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목에 사람이 사망할 정도의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아마도 피해자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이미 사망한 상태였을 것이다. 교통사고는 살인을 위장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법의학자다. 그는 사람의 인체에 대한 수많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통해 사건, 사고에 얽힌 많은 시체를 분석하고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해 왔다.
책 초반에는 구체적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대한 경험을 소개한다. 과학적인 분석으로 사람의 생명이 걸린 사건의 진실을 어디까지 파악해 나갈 수 있는지를 실감 나게 소개한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사실을 설명하면서도 항상 사람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 핵심을 짚어 가는 저자의 태도가 책에도 잘 담겨 있다.
책이 독특한 힘을 발휘하는 대목은 중반부터다. 노련한 법의학자로서 수많은 죽음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아 온 저자의 시점에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온갖 고민을 해 본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람의 죽음을 정확히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하는가부터 죽음의 과정이나 장례에 대한 이야기, 죽음을 마주할 때 사람들이 겪게 되는 현실에 대한 통계와 기록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또 죽음이 사라진 미래에 대한 발상 등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수백 년 전 철학자가 이야기하는 주장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사상과 이론의 틀로 죽음을 풀이하는 내용도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죽음을 본 저자의 관찰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때문에 나는 그가 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었다. 삶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인생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기회라는 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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