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는 궁금한 게 많거든요. 난 흠결이 많고 모험적인 사람이라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요.”
벨라(엠마 스톤)는 지난달 6일 개봉한 영화 ‘가여운 것들’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위험하니 밖에 좀 돌아다니지 말라는 이들에게 자신의 성격을 이유로 든 것. 벨라는 선천적으로 타고나길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아버지처럼 따르던 천재 과학자 갓윈 백스터(윌럼 더포)의 집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벨라를 ‘천방지축 소녀’처럼 바라본다. 벨라가 먹던 음식이 맛이 없고 뱉으면 “예의가 없다”고 혼을 낸다. 벨라가 시끄럽게 우는 아이를 혼내려 하면 폭력성이 짙은 여자처럼 바라본다. 벨라는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 웨더번과 세계 여행을 다니는 벨라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여자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벨라는 타고난 천방지축일까. 혹시 벨라를 옭아매는 시대가 만든 억압 때문 아닐까.
● ‘빅토리아 시대’ 응시한 원작
“매년 젊은 여성 수백 명이 가난과 지독하게 부당한 우리 사회의 편견 때문에 스스로 물속에 몸을 던진다네.”
1992년 쓰인 원작 소설 ‘가여운 것들’(황금가지)에서 갓윈 백스터는 한 여성을 살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영국 스코트랜드 도시 글래스고를 지나는 클라이드강에 투신하는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이 여성은 임신 중이었다. 현수교 난간에서 뛰어들었다. 여성의 뇌는 멈췄지만 몸에 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갓윈은 아기를 꺼낸 뒤 아기의 뇌를 여성에게 이식했다. 그 뒤 여성의 몸에 고압 전류를 흘려 살려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체는 몸은 성인 여성이지만 지능은 갓난아기다. 기이한 생명체 ‘벨라’는 이렇게 탄생했다.
왜 벨라가 투신했는지를 알려면 작품의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당시 영국 여성에겐 참정권이 없었다. 영국은 1928년 전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부여됐다.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본인이 여성이면서도 여성 인권 향상에 혐오감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는 급성장하고 국가가 팽창해 대영제국의 황금기라 불렸지만, 여성에 대한 도덕적 시선은 경직돼 있었다.
특히 벨라의 옛 남편 블레싱턴 장군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괴물 같은 인물이다. 대영제국을 이끈 블레싱턴 장군은 툭하면 하인들에게 총을 겨눈다. 영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블레싱턴 장군은 이런 시선을 여성인 벨라에게도 보낸다. 벨라의 성욕을 제한하는 수술을 하려고 하며 “이슬람교도들은 자기 여자들에게 출생 후 곳 그것을 시키지. 그것이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양순한 아내로 만든다오”라고 천명할 정도다.
벨라가 남편과 정략 결혼한 것도 벨라 아버지의 이기심 때문이다. 벨라 아버지는 벨라에게 “넌 당연히 남편을 사랑해야 했어! 남편은 나 외에 네가 만나는 것이 허용된 유일한 남자였다”고 사랑을 강요한다. 벨라가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는 이 남자들 곁에서 도망칠 방법은 투신뿐이었다.
이처럼 원작과 영화는 사망한 성인 여성의 몸에 태아의 두뇌를 결합하여 탄생한 피조물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공유하지만 접근법은 다르다. 원작을 번역한 이운경 번역가는 “영화는 순수한 인간의 사고가 얼마나 자유롭게 해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원작은 여성을 억압하고, 제국주의가 팽창했던 당시 영국의 시대상을 짙게 응시한다”고 말했다.
특히 영화는 벨라의 섹스신을 소설보다 더 많이 등장시킨다. 벨라가 처음 자위를 하고, 덩컨 웨더번과 성에 탐닉하고 매음굴에서 주체적으로 일하는 장면을 수차례 보여준 것. 소설에선 이런 장면이 직접 등장하는 부분이 적다.
이같은 장면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이런 장면을 넣은 건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벨라의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서다. 성에 대해 아무런 편견 없이 호기심으로 일관하는 벨라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 란티모스 감독은 지난해 12월 아카데미 디지털 매거진인 ‘A.frame’과의 인터뷰에서 “벨라는 과도한 노출, 섹스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호기심이라는 동일한 태도로 모든 것에 접근한다”고 했다.
● ‘프랑켄슈타인’ 닮은 백스터 박사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이 각색된 것도 특징이다. 원작을 쓴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1934~2019)는 사회문제에 적극 목소리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원작 소설에서도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정교하고 신랄하게 풍자가 자주 등장한다. 벨라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지니게 되는 과정도 깊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벨라가 여행 중 만난 ‘회의주의자’ 해리는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원작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아주 가난한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구걸하고, 거짓말하고, 훔치는 법을 배워요.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테니까 말이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굶주리게 되자 의회 의원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소. 정부는 혁명을 두려워했으니까.”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평화주의자나 비폭력 무정부주의자 가운데 있소. 그들은 우리가 세상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스스로를 개선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본받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해요.”
반면 영화에서 벨라는 여행 중 알렉산드리아에 방문했다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방식으로 요약됐다. 상류층인 자신이 시원한 카페에서 풍경을 즐길 때 밖에선 더운 날씨와 식량 부족으로 가난한 이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목격한 것이다. 다만 벨라의 감정을 동정으로 전달할 뿐 깊게 들어가진 않는다. 그리스 출신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지난해 12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원작소설 중 철학, 정치에 대한 내용은 삭제하기로 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란티모스 감독은 대신 인간의 ‘정체성’에 천착했다.과학 실험으로 괴물을 만든 뒤 괴로워하는 창조자 갓윈 백스터의 흉측한 모습은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을 생각나게 한다. 갓윈의 철자 ‘Godwin’은 프랑켄슈타인을 쓴 영국 작가 메리 셸리(1797~1851)의 혼전 성씨니 원작 소설가의 의도를 감독이 담은 셈이다.
● ‘스팀펑크’ 영상미 두드러져
영화가 등장인물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잘 살려낸 점도 돋보인다. 갓윈 백스터의 외양이 원작 소설에서는 이렇게 묘사돼있다.
“커다란 얼굴, 두툼한 몸피, 그리고 굵직굵직한 사지 때문에 그의 외양이 난쟁이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깊고 영구적인 주름 세 개로 골이 진 이마에도 희망으로 가득 찬 폭이 너른 눈, 들창코, 그리고 안달하는 어린애의 애처로운 입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영화 속 백스터의 얼굴은 오려 붙인 듯한 큰 흉터로 가득하다. 비정상적으로 자라난 한쪽 턱도 두드러진다. 아버지에게 수차례 생체 실험을 당했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려는 듯하다. 원작과 달리 스스로 위액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어 외부 장치에 의존한다는 충격적 설정까지 더해졌다.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미장센을 인정받은 이유다.
영화가 빅토리아 시대의 의상과 건물에 환상적 이미지를 더한 점도 눈길 끈다. 열기구가 지중해 위로 솟아오르고, 공중 전차가 골목 위에 매달린 밧줄을 따라 날아가는 영상을 보여주며 이곳이 과거인가 미래인가 헷갈리게 한다. 빅토리아 시대 과학기술에 환상적인 요소를 도입한 공상과학(SF)의 하위 장르인‘스팀펑크’의 영상미가 두드러진다.
벨라의 시선에서 주로 진행되는 영화와 달리 원작 소설은 구성이 복잡하다. 벨라의 남편인 맥캔들리스가 쓴 문건이 주된 ‘첫 번째 이야기’라면 이를 벨라가 반박하는 편지인 ‘두 번째 이야기’가 다른 한 축에 있다. 한 사건에 대해 시선을 달리하며 시각차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소설은 작가인 엘러스데어 그레이가 맥캔들리스의 문건과 벨라의 편지를 각각 발견해 정리하는 ‘세 번째 이야기’로 정리돼있다. 작가 자신이 여러 문건을 조사하고 발견해 이 소설을 출간한다고 능청스럽게 서술하는 것.
예를 들어 소설에서 작가는 “독자들은 어쩌면 이 이야기를 기이한 허구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이 서문의 말미에 실은 증거들을 조사한 사람들이라면, 글래스고의 파크 서커스 18번지에서 한 천재 외과의가 인간의 유해를 사용해 25세의 여성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치 역사적 사실인 척 말한다.
이는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가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1980년)에서 자신이 1968년 출간된 ‘마비용 수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아드송의 수기’를 입수한 뒤 번역해 출간하는 것뿐이라고 능청을 떠는 방식과 비슷하다. 이 작품이 형식을 파괴하며 다양한 해석을 낳는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장은진 황금가지 편집자는 “영화가 벨라의 시선에서 직선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원작은 이야기가 여러 겹으로 덮혀 있다. 독자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도록 하는 형식미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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