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걱정 없이… 먹고 떠들며 보는 ‘열린 공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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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스카팽’ 금기로 여기던 관객대화-화장실 출입 등 모두 허용… 관객이 실시간 바꿔가는 공연도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스카팽’은 객석 조명을 완전히 끄지 않고 관객 간 대화, 중간 입·퇴장 등을
 허용하는 ‘열린 객석’을 운영 중이다. 스카팽의 실제 공연 중에는 사진 취재가 금지돼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허용되는 모습을 
연출해 찍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스카팽’은 객석 조명을 완전히 끄지 않고 관객 간 대화, 중간 입·퇴장 등을 허용하는 ‘열린 객석’을 운영 중이다. 스카팽의 실제 공연 중에는 사진 취재가 금지돼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허용되는 모습을 연출해 찍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2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연극 ‘스카팽’의 막이 오르고 첫 대사가 들렸지만 극장은 깜깜해질 기미가 없이 훤했다. 관객들은 거실에서 TV를 보는 듯 옆 사람과 웃으며 속삭였다. 몰입에 자칫 방해될 정도로 너무 큰 손뼉과 환호도 터졌다. 공연 중간 밖으로 나가 스트레칭을 하고 오는 사람까지. 하지만 이를 제지하는 이도, 불만을 토로하는 이도 없었다.

이번 시즌 ‘스카팽’은 ‘열린 객석’으로 운영되며 이를 사전에 공지했기 때문. 이에 따라 극 중간에 입장, 퇴장도, 일정 소음 발생 등도 허용됐다. 관객으로서는 보다 ‘과감한 관람 모드’가 가능해진 것. 아홉 살 자녀와 극장을 찾은 김모 씨(43)는 “평소 공연을 볼 때 아이가 일부 장면에서 화들짝 놀라거나 모르는 내용을 질문할 때면 주변 관객들 눈치부터 살피곤 했다. 오늘은 부담을 내려놓고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직장인 최모 씨(26)는 “평소 ‘남들 웃을 때만 웃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는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실컷 웃으며 몰입했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 최근 사진 촬영, 음식물 섭취 등 소위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타인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 논란을 사며 금기시되던 것들에 도전하는 작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달 15∼23일 서울 용산구 아쉬랩하이에서 공연되는 배우 성수연, 양대은 주연의 연극 ‘타임스퀘어’는 관객 몰입을 떨어뜨리는 행위 50여 가지를 폭넓게 허용한다. 반려동물 동반부터 스마트폰 사용, 간단한 간식 및 주류 섭취까지 가능하다.

심지어 ‘관크’로 규정돼 금하던 행동들을 관객 참여와 소통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공연도 있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열린 다원 예술 ‘메이크 홈, 스위트 홈’은 공연 중 각자 스마트폰을 통한 투표를 진행해 투표 결과에 따라 극 전개가 실시간으로 바뀌도록 했다. 객석 의자는 전부 없앴다. 관객은 마치 전시회를 보듯 극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퍼포머들을 발치에서 구경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이러한 공연들은 젊은 연출가들을 중심으로 엄숙한 극장 문화에 변화를 주려는 움직임의 결과다. ‘메이크 홈, 스위트 홈’의 변재하 연출가는 “관객을 통제하는 기존 공연계 관람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꼈다. 안전 등 이유로 꼭 제한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자율성에 맡기고 싶었다”고 했다.

자유로운 관람 분위기를 통해 극장이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의도도 크다. 김정연 국립극단 PD는 “집중력이 비교적 흐트러지기 쉬운 어린이, 노인 관객이나 외부 환경에 민감한 공황장애, 자폐스펙트럼 등을 지닌 관객 등에게 경직된 관람 문화는 높은 장벽”이라며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 27회 전석 매진을 이끈 화제작 연극 ‘푸드’. 작품을 연출하고 배우로 출연한 제프 
소벨(왼쪽)은 무대 위 식탁에 둘러앉은 관객 30명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메뉴를 주문받으며 ‘우리는 무엇을, 왜 먹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강동문화재단 제공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 27회 전석 매진을 이끈 화제작 연극 ‘푸드’. 작품을 연출하고 배우로 출연한 제프 소벨(왼쪽)은 무대 위 식탁에 둘러앉은 관객 30명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메뉴를 주문받으며 ‘우리는 무엇을, 왜 먹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강동문화재단 제공
공연의 기존 문법을 깨는 파격적 시도가 창작자, 출연진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스카팽’의 임도완 연출가는 “지난 시즌과 달리 공연 시작부터 관객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 배우들도 더욱 열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 연극에선 배우가 금기시된 행동을 직접 하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4∼7일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미국인 연출가 제프 소벨이 주연까지 맡은 연극 ‘푸드’는 웨이터 복장의 배우가 대형 식탁에 둘러앉은 관객에게 말을 걸고 와인을 따르며 주문을 받거나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치워 화제가 됐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기존 규범을 전복하려는 젊은 창작자들과 수동적 관람 방식에서 벗어나 공연의 일부가 되려는 젊은 관객의 수요가 맞아떨어졌다”며 “당분간 자유로운 관극 문화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연극#스카팽#음식물 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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