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주지 스님이 차를 권했다. 늘 보던 것과 달리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하얀빛. 진한 차 맛을 기대하고 한 모금 마셨는데, 생각과 달리 약간의 단맛이 나는 맹물에 가까웠다. “무슨 맛은 나지요? 허허허. 이게 진짜 녹차 맛입니다.”
15일 경남 하동군 쌍계사에서 만난 주지 지현 스님은 “차를 마시는 과정이 수행하는 것 같다는 뜻에서 선다일미(禪茶一味)라고 한다”며 “마시기 전 3분만 조용히 명상에 잠겨도 마음속 화가 많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4 쌍계사 세계 차문화대축전’(5월 2∼5일)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쌍계사가 우리나라에서 차를 처음 심은 시배지(始培地)이다 보니 준비가 소홀하면 안 돼서 좀 바쁘네요. 올해는 시배지에서 찻잎을 채취하는 개원채다 의식, 다도의례, 다맥전수식 등과 함께 청소년을 대상으로 ‘茶-디카시로 만나다’라는 행사도 엽니다.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을 찍고 이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지요. 젊은 세대에게 차를 좀 더 친숙하게 알리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중장년층을 위해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등이 공연하는 ‘쎄시봉 콘서트’도 열지요.”
―쌍계사가 우리나라 차나무 시배지란 걸 잘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요.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인 이곳에 처음 심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문성왕 2년에 진감혜소선사가 쌍계사를 창건하면서 이곳 하동군 화개 일대에 차나무를 번식시켰지요.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다맥이 사라져 갔는데, 중창주인 고산 대선사가 1975년 주지로 부임하면서 복원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시배지라 그런지 절 안에 차향이 그득합니다.
“하하하, 그건 장작 냄새인데…. 장작이 비에 젖으면 차랑 비슷한 냄새가 나지요. 여기가 나무가 많아서 화목 보일러를 때거든요.”
―차를 어떻게 마시면 수행이 되는 건지요.
“일본 교토에 유명한 다도선원이 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마시는데 딱 두 잔 나옵니다.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고, 그릇을 닦고 하면서 차 한 잔을 온전한 무념무상의 상태로 마시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이런 경지를 선다(禪茶)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도 누구나 3분만 노력하면 차를 마시며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3분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고요.
“사람 마음이란 게 화가 나거나 고민이 있을 때는 평소보다 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러니 점점 더 머리가 복잡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지요. 이미 마음이 흙탕물인데 그걸 더 저으니 답이 보이겠습니까? 답을 찾기 전에 먼저 흙탕물을 가라앉혀 맑게 만들어야지요. 차를 앞에 놓고 정말 3분만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어 보세요. 마음이 굉장히 가라앉는 것을 느낄 겁니다. 수행이 별건가요. 마음을 맑게 만들면 그게 수행이지요. 커피로도 괜찮아요. 저도 자주 마십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