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씩 (공개되기를) 기다렸다가 보는 재미도 꽤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감질나게 절정의 순간에서 끊어버리면 다음주를 기다리게 되잖아요. 싸구려 트릭이라 할 수 있지만 저는 그게 좋아요. 그 맛에 드라마 보는 거 아니겠어요?”
박찬욱 감독(61)이 18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HBO 신작 드라마 ‘동조자’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동조자’는 박 감독이 공동 쇼러너(show runner)로 제작·각본·연출 전 과정을 지휘한 작품으로 그의 두번 째 시리즈물이다. 박 감독이 ‘헤어질 결심’(2022년)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뒤 처음 내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총 7화 분량으로, 15일 쿠팡플레이에서 1화가 공개됐고 매주 월요일 1화씩 공개된다.
‘동조자’는 베트남인 주인공 대위(호아 숀데이)가 겪는 시대상과 그에 따른 정체성 변화의 여정을 섬세하게 따라간 작품이다. 배경은 1970년대 베트남과 미국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대위가 사이공 함락 이후 자신이 모시던 남베트남 장군과 함께 미국으로 향해 이중간첩 노릇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퓰리처상을 받은 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박 감독이 직접 각색했다.
박 감독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베트남인도 미국인도 아니라 가질 수 있는 거리감이 있었고 그 덕에 객관성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근현대사를 겪은 (베트남에)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며 “내전의 배후에 강대국이 있었다는 사실, 남한 안에서의 이념투쟁같은 것은 한국인에겐 공기같은 일이다. 적어도 미국인보다는 그 정을 잘 이해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동조자’에는 ‘아이언맨’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1인 4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원래는 다 다른 인물을 캐스팅할 계획이었지만 박 감독 아이디어로 바뀐 부분이다. 박 감독은 “등장하는 4명의 인물이 각각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교수, 영화감독, 하원의원이다. 중요한 일을 하는 백인 남성들”이라며 “각 캐릭터가 미국을 잘 보여주는 네개의 얼굴일 뿐 결국 하나의 존재라는걸 느꼈다. 그 점을 시청자가 단박에 알아채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명의 배우가 4역을 모두 연기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1인 4역을 제안했을 때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박 감독은 드라마가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을 ‘유머’로 꼽았다. 그는 “영상매체는 관객이 인물의 얼굴과 둘러싼 환경, 공간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갖고 있다. 소설에는 없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이 가진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유머를 최대한 사용했다”고 말했다.
전작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9년)에 이어 첩보물을 선택한 것에 대해 박 감독은 “이런 이야기에 끌린다. 영화감독이 되도록 이끈 제 성향과 스파이 소설을 좋아하는 성향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거짓말을 하나 만들고 세상이 그럴듯하게 믿도록 만드는 공작, 그게 영화감독이 하는 일과 굉장히 비슷해요. 곳곳에 넣은 유머를 음미해가면서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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