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작가(81)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영문판 ‘마터 2-10’)에 대해 영국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인용한 해외 평론 중 가장 눈길이 간 부분이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사실과 환상을 뒤섞는 문학 기법이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이 대표적이다. 왜 ‘철도원 삼대’는 마술적 사실주의라 불린 걸까.
‘철도원 삼대’는 노동자 이진오가 농성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진오는 자신을 해고한 회사에 저항하기 위해 아파트 16층 높이의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농성 중이다. 낮과 밤 모두 굴뚝 위에서 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진오는 굴뚝 아래 동료나 가족에게 점점 잊히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외로워진 이진오는 페트병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붙인다. 페트병에 말을 걸며 굴뚝 위 시간을 견딘다. 매섭게 춥던 어느 긴 밤 이진오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다. 페트병은 점점 죽은 사람 그 자체가 된다. 이진오는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다.
“이진오는 지금 굴뚝 위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중략) 그는 버려지거나 잊힌 것도 아니고 그냥 가로수보다도 못한 관심 밖의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비현실에서 이진오가 만나는 건 집안사람들이다.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은 일제강점기 일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경성에서 출발한 기차가 닿는 종점인 인천과 영등포에서 철도를 건설하는 노동자로 삶을 버텼다. 이백만의 장남 일철은 철도원 양성 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았다. 평양부터 중국까지 화물열차를 운행하며 집안의 자랑거리가 된다. 반면 차남 이철은 공장에 다니다 해고당한다. 노동자로 전전하다가 독립운동가가 됐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같은 집안 여성들도 이진오의 비현실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는다.
특히 세상을 떠난 이들과 이진오가 만나는 장면은 마치 진짜처럼 묘사된다. 우리의 인생은 오롯이 현재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왔다는 걸 이야기하는 듯하다. 또 고달픈 인생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더 고달팠던 이들뿐이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소설에서 할머니는 이진오의 손목을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어기 하늘에 별들 좀 보아. 수백 수천만의 사람이 다들 살다가 떠났지만 너 하는 짓을 지켜보구 있느니.”
사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최근 3년 연속 한국 작품을 최종 후보로 선정할 때마다 마술적 사실주의란 단어를 썼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2022년 최종 후보 정보라 단편소설집 ‘저주토끼’에 대해 “마술적 사실주의, 호러, 공상과학(SF)의 경계를 초월했다”, 지난해 최종 후보 천명관 장편소설 ‘고래’에 대해 “마술적 사실주의로 단순한 사건에 숨겨진 의미를 부여한다”는 해외 평론을 인용했다. 한국 작품이 다른 후보작에 비해 유독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것인지는 명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보고 있는 한국 작품에 대한 경향이 하나의 단어로 수렴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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