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어머니 삶 취재 日 작가
농인 아버지와 ‘사랑의 도피’ 등 당시 감내해야 했던 사회적 차별
휠체어 탄 여성들의 이야기
운동선수부터 대학 교수까지… 행복한 인생 위한 ‘꿀팁’ 공유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김지우 지음/276쪽·1만8000원·휴머니스트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이가라시 다이 지음·노수경 옮김/208쪽·1만6000원·사계절
“어머니는 어떻게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수 있었을까?”
신간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의 저자는 이른바 ‘코다’(CODA·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및 비청각장애인)다. 일본 미야기현 출신으로 2015년부터 작가로 활동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신간은 1950년대 가족 중 유일한 농인(聾人)으로 태어난 어머니의 삶을 취재해 쓴 에세이다.
신간을 집필하게 된 것은 할머니로부터 어머니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사랑의 도피’를 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당시 어머니의 가족들은 같은 농인인 아버지와의 결혼을 반대했었고, 가출을 계기로 겨우 결혼을 인정받았다. 저자는 늘 방글방글 웃기만 하는 어머니와 어울리지 않는 대범한 과거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저자가 캐낸 어머니 사에코의 유년기는 몹시 외로웠다.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부모가 그녀를 일반 학교에 보냈기 때문이다. 들리는 사람 속 홀로 들을 수 없어 늘 겉돌아야 했다. 가족들 모두 수어를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사에코와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지 않았던 이 가족의 역사는 20세기 중후반 일본 농인들이 경험한 소외의 시간과 같다. 사에코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농학교에 입학해 친구들과 어울리며 생기를 찾는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사에코를 무작정 외면한 것은 아니다. 사에코의 아버지 ‘긴조’는 딸의 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며 딸에게 힘껏 말을 가르쳤다. 사에코의 엄마인 나에코는 딸의 귀가 낫도록 열심히 기도를 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서툰 애정을 받는 어머니의 삶을 다각도로 취재해 복원해 내는 저자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사에코 개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던 저자의 관심이 농인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저자는 1948년 일본에서 성립한 우생보호법의 불합리함을 꼼꼼히 파헤친다. 당시 패전 이후 양질의 인구 증가를 꾀하던 일본은 이 법을 이용해 유전성 질환, 한센병, 신체장애 등 56가지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한다. 1996년 모체보호법으로 개정되기 전까지 국가에 의해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피해자는 1만6500여 명에 달한다. 관련 재판에 참석하고,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며 자신의 탄생이 커다란 운임을 깨닫는 저자의 모습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신간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는 휠체어를 탄 여성 장애인에 초점을 맞춘다. 책은 뇌병변장애를 가진 여성이자 유튜버로 활동 중인 저자가 “더 많은 장애 여성이 몸을 던져 수많은 세계에 가닿을 때까지 달리겠다”며 기획한 메일링 서비스에서 출발했다. 10∼60대 여성 휠체어 장애인 6명과의 인터뷰가 담겼다.
소수자는 종종 ‘장애인’과 같은 한 단어로 묶여 호칭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이들 모두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생동감 넘치는 인간임을 깊이 느끼게 된다. 청소년과 비건, 장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10대 유지민 양, 노르딕 스키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20대 주성희 씨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로서 한국과 미국의 특수교육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60대 김효선 씨까지…. 이들은 장애 여성으로서 산부인과 검진 의자에 올라가는 법,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법, 운동하는 재미 등 삶을 살아나가는 자신들만의 요긴한 꿀팁을 전한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우리 주변에 있는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