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개막 ‘궁중문화축전’ 참여하는 2030 무형문화유산 전승자들
대를 이어… 30대 유기장 이지호 씨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유기 매력… 미슐랭 식당과 협업 등 현대화 고민”
꿈을 향해… 20대 단청장 안유진 씨
“수천번씩 ‘고팽이’ 무늬, 힘들지만… 이 길 들어선 걸 후회한 적은 없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방짜유기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22일 서울 경복궁에서 만난 이지호 유기장 이수자(38)는 “놋쇠로 만든 유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아무리 때려도 제 마음처럼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방짜유기장은 불에 달군 놋을 망치로 때려 기물을 제작하는 장인으로 국가무형문화유산에 지정돼 있다. 이 씨는 유기장 명예보유자인 할아버지와 보유자인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이수자는 보유자로부터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무형문화유산을 계승하는 이로, 전승교육사를 거쳐 보유자가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이 씨는 한국문화재재단 주관으로 27일 개막하는 ‘궁중문화축전’에 참여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이 행사는 경복궁 등 서울 5대 궁궐과 종묘에서 야간 관람과 공연, 전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씨는 처음에는 가업을 이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 기름이나 쇠 냄새에 절어 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2012년 은행에 입사해 4년간 대출 담당자로 일했다.
하지만 그의 핏속에 흐르는 장인의 기질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다. 유기에 애착을 갖고 밤을 새워 제품을 만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내가 주체가 돼 작품을 만들어 내는 유기장 일이 문득 멋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후 은행을 관두고 아버지의 공방으로 출근해 기술을 배우는 동시에 금속공예 대학원을 다니며 이론을 익혔다. 굽은 젓가락을 망치로 수없이 두드려 펴는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이제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거 방짜유기는 요강이나 대야로 많이 사용됐지만 생활방식이 바뀌면서 요강 등의 수요가 급감했다. 이 씨가 최근 유기를 활용한 식기나 인테리어 소품을 많이 만드는 이유다. 궁중문화축전에서 전통 문화상품을 파는 ‘K-헤리티지 마켓’에도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한 유기 식기와 수저, 테이블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씨는 “미슐랭 선정 식당과 협업해 유기 식기 납품을 추진하는 등 ‘전통의 현대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청장 이수자인 안유진 씨(26)도 이 씨처럼 전통공예 기술을 어떻게 이어 나갈지를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안 씨는 “단청의 최대 매력은 화려한 색상”이라며 “목조건물의 병충해를 막아주는 등 기능적으로도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8년 숭례문 화재를 보고 단청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아버지의 금은방 앞에 있어 자주 보던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본 게 계기가 된 것.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자신의 꿈을 찾아 2019년 한국전통문화대에 진학해 단청을 전공했다.
디자인을 공부할 땐 컴퓨터로 간단하게 긋던 선을 장척(긴 자)으로 긋는 게 번거로울 때도 있었다. 단청의 나선형 무늬인 ‘고팽이’를 수천 번 그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 길로 들어선 걸 후회한 적은 없단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단청 작업 과정을 쇼츠(짧은 동영상)로 제작해 올리고, 초등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등 젊은 세대에게 단청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색이나 금색을 많이 사용하는 중국 단청과 달리 오방색(노랑, 파랑, 빨강, 검정, 하양 등 전통색상)을 사용하는 한국 단청은 알록달록한 색의 조화가 돋보인다. 그는 “일상용품에 한국 단청의 아름다움을 적절하게 적용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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