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폰지 사기 등 온갖 속임수… 인지심리학자 저자 샅샅이 분석
속임수에 취약한 인지적 습관과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수법 소개
“덜 받아들이면서 더 확인하고, 사기꾼처럼 생각해야 안 속아”
◇당신이 속는 이유/대니얼 사이먼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지음·이영래 옮김/472쪽·2만4000원·김영사
“이 차는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2016년 미국 수소 전기 트럭 기업 니콜라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이 시제품을 공개하면서 한 말이다. 니콜라는 수소로 움직이는 자율주행 트럭 영상을 선보였지만, 알고 보니 이 차는 전지와 모터조차 없는 ‘가짜’였다.
트럭을 언덕 위에서 굴려놓고 땅이 평평하게 보이도록 카메라를 조작해 만든 영상에 투자자들은 속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이 조악한 속임수에 속는다고?”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사기 행각이 실제로 발각되기 전까지 니콜라의 시가총액은 약 36조 원에 달해 굴지의 자동차 생산업체인 포드를 넘어섰다.
신간은 많은 사람들이 교묘한 속임수와 사기에 속아 넘어가는 이유를 샅샅이 파헤친 심리학 책이다.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들은 인지적 습관이 속임수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설명한다. 가짜 뉴스, 이메일 피싱 사기부터 미국 월스트리트의 폰지 사기까지 다양한 속임수 사례들이 등장한다.
저자들은 성공적인 속임수는 예측, 집중, 전념, 효율 등 인간의 4가지 인지 습관을 활용해 벌어진다고 말한다. 특히 예측이 우리의 경험과 맞아떨어지면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크다. 조지 W 부시가 군 복무 당시 신체검사를 건너뛰는 등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해 2004년 9월 미국 CBS 뉴스 앵커 댄 래더가 사임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CBS 취재진은 당시 공군수비대에 복무 중이던 빌 버킷의 제보를 토대로 이를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부시가 젊은 시절 한때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됐다는 사실이 보도에 영향을 끼친 것. 제보 내용과 기자들의 예측이 일치했기에 다른 취재만큼 제대로 제보를 검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밀성, 일관성, 친숙함, 효능 등 사기꾼들이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법 네 가지도 소개한다. 똑똑한 사기꾼들은 장기간에 걸쳐 신뢰를 유지하려면 정밀하고 구체적인 세부사항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피 한 방울로 모든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했다고 세상을 속인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스 최고경영자(CEO)는 정밀하게 위조된 자료들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했다. 미군에 기기를 납품했다는 사실을 설명할 때는 미군이 어느 곳에 자신의 기기를 배치했는지, 어떤 회사가 기기의 정확성을 검증했는지 등 디테일한 정보를 계속 주입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과 속임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덜 받아들이고, 더 확인하라”는 원칙을 제시한다. 예컨대 누군가로부터 일생일대의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다면 반드시 세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멋진 기회가 하필 나에게 찾아올 확률은?’ ‘내가 원하는 일과 상대가 원하는 일이 반드시 같을 확률은?’ ‘내가 속기 쉬운 상황과 장소에 처해 있진 않은가?’
평범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정보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사기꾼들은 모든 정보에 집중한다. 저자들은 속지 않으려면 사기꾼처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운 이때,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심리적 기제를 마련해 놓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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