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마틴 기획전 ‘완벽의 순간들’
강릉 솔올미술관 54점 국내 첫 소개
객원큐레이터 모리스 “영적인 만남”
다큐 영화 ‘세상을 등지고’도 눈길
화가 아그네스 마틴(1912∼2004)은 가까운 친구였던 안 글림셔 페이스갤러리 회장의 손녀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정원에서 장미꽃을 꺾어 보여준다. “이 장미꽃이 아름답니?”라고 묻는 마틴에게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이어 마틴은 장미꽃을 등 뒤로 가져가 감춘 뒤 다시 물었다. “그 장미꽃이 여전히 아름답니?”
글림셔 회장은 생전 마틴과의 일화를 그의 전기에 털어놓으며 “마틴은 아름다움이 외부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장미꽃을 비롯한 대상은 마음속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장치임을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감정을 추상 회화로 캔버스에 풀어놓은 화가 마틴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2월 14일 개관한 강원 강릉 솔올미술관의 두 번째 기획전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을 통해서다. ● 객원 큐레이터로 나선 모리스
4일 개막한 ‘아그네스 마틴’전은 1955년 초기 작품부터 1990년대 마틴이 양로원에서 지낼 때 그린 말년의 작품까지 총 54점을 소개한다. 마틴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으로, 프랜시스 모리스 전 영국 테이트모던 관장이 객원 큐레이터를 맡아 미술계의 관심을 모았다.
3일 기자간담회에서 모리스 전 관장은 “2년 전 큐레이터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마틴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다고 해 놀랐다”며 “새로운 관객에게 처음으로 소개할 수 있어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틴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회고전을 할 수는 없어 중요한 순간들을 선별해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다”며 “이 때문에 전시 제목을 ‘완벽의 순간들’이라고 붙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미술관 내 두 갤러리, 전시실 2, 3에서 열리는 소규모 전시인 만큼 마틴의 작업 세계 변화를 ‘맛보기’할 수 있는 전시다. ● ‘세상을 등지고’ 다큐멘터리 눈길
전시장에 들어서면 1955년과 1957년 작품 ‘무제’가 관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마틴은 기하학적 추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들은 대표작과 달리 마크 로스코나 아실 고르키 등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리스는 “추상표현주의나 앵포르멜 같은 추상 작업의 기원을 탐구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1964년 ‘나무’, 1973년 ‘어느 맑은 날에’ 같은 작품에 이르면 곡선이 완전히 사라지고 수직, 수평선만 나타나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변한다. 이후 전시실 2의 가장 넓은 공간에는 회색으로만 이뤄진 단색 작품 8점이 걸려 있다. 마지막 전시실 3에서는 양로원에 머물며 고요하게 명상하는 가운데 떠오른 이미지를 그린 ‘순수한 사랑’ 연작 8점이 소개된다.
모리스는 “마틴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를 다니며 예술을 할 때 선불교와 도교 철학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고독하고 조용한 가운데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절제된 색채와 선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이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던 마틴은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다.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맥시멀리스트’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마틴의 생전 모습은 세미나실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등지고’에서 더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메리 랜스 감독이 그의 작업실을 찾아 만든 것으로, 그림을 그리는 마틴의 모습과 그의 생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마틴의 전시와 함께 전시실 1에서는 한국 작가 정상화의 개인전도 열린다. 8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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