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혈질-문제아에 ‘꽥꽥’ 목소리로 놀림당하던 도널드덕 90살 생일파티에 마침내 ‘슈퍼스타’ 추앙받는 모습에 괜스레 감개무량하고 코가 찡했다. 내 마음은 왜였을까.
“♪ 우린 도널드덕을 사랑해! 세상 하나뿐인 도널드덕~♬”
만년 꼴등까지 갈 것도 없다. 만년 2등이 결국 모두에게 사랑과 박수를 받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왈칵하고 차올라버린다. 바로 얼마 전 40주년 행사를 마무리한 도쿄 디즈니랜드가 올봄 펼치고 있는 ‘도널드덕 더 레전드’ 퍼레이드를 보고 온 소감이다.
‘최애’가 되기 어려운 오리
디즈니 캐릭터 중 이 ‘괴팍한 오리’를 최애로 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뭐라고 말하는지도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성우는 헬륨가스도 없이 이 목소리를 40년을 연기했다―, 거만하고 욕심 많은 성격, 툭하면 미간을 찌푸리고 깃털 주먹을 휘두르며 폭발해버리는 오리. 월트 디즈니는 한 애니메이션에서 자기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가족사진(아래)을 보여주며 “도널드덕은 문제아”라고 콕 집어 말했을 정도다.
남을 골리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도널드덕 주변엔 적이 많다. 툭하면 욱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도널드 덕에게 자주 비유됐다. (아마존에서 “Duck Trump”를 검색하면 당최 누가 사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인면(人面) 오리 러버덕이 잔뜩 나온다) 동시에 도널드덕은 겁도 많고 운도 나쁘다. 매번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무언가에 대들지만,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당하고 만다.
모두에게 사랑받기 어려운 캐릭터,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도널드덕은 어떤 사람들에게 짠하고 깊은 애정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도널드덕은 디즈니 캐릭터 중 유일하게 군대에 입대해 일본군과 싸웠다. 람보처럼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침투해서 어찌어찌 일본군을 섬멸시키기도 했지만―요즘도 한국 시청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조명받는 활약이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미 육군에서 싸운 경력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선 유독 미키마우스보다 도널드덕의 인기가 더 좋다. 항상 반듯하고 각 잡힌 군인 이미지라는 ‘선입견’을 뒤집어쓴 독일인들은 도널드덕의 좌충우돌을 보고 웃으면서 사실은 자기 모습을 본다고 한다.
“똑똑한 미키와 달리 도널드덕은 뭘 해도 안 되는 루저이고 완벽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죠.”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의 한 교수는 AFP통신에 그들이 ‘영원히 불운한 오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생각도 똑같다.
꽥꽥대는 도널드, 꾸역꾸역 사는 나
나 역시 도널드덕을 좋아한다. 그가 멋진 빌런이 아니라서 좋아한다.
그에겐 결점이 많다. 도널드는 오만하고, 욕심이 많고, 자존감도 낮은 오리다. 하지만 세 조카 휴이듀이루이를 살뜰히 챙기고, 요리를 좋아하고, 매일 질투 속에 살면서도 세일러복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챙겨 매며 뽐을 낸다. 늘 밝고 완벽한 미키마우스가 유재석이라면, 약점 많은 도널드는 정형돈 같은 캐릭터다.
결점이 없는 사람은 멋지고 부럽지만, 사랑하기가 어렵다. 내가 결점 그 자체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다만 결점을 갖고도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그 모습이 애잔하고 공감 간다. ‘꾸역꾸역’은 그래서 내가 참(때론 지나치게) 자주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며 산 것 같지만, 결과까지 최고가 된 적은 드물었다. 그런 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던 단어를 삶의 모토로 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나왔던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의 책 ‘마음의 지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꾸역꾸역 이란 단어는 모범생다운 성실성이나 근면함과는 조금 다르다. 스스로 만족하지 않더라도 그 점들을 짊어지고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것에 가깝다. 그래도 그가 “어찌어찌 꾸역꾸역 해내는 사람”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강한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라고 쓴 것은 나에게는 작은 힘이 되었다. 아무렴, 완벽한 미키 마우스만 잘 살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슈퍼스타’ 도나를 추앙해
다시, 얼마 전 도쿄 디즈니랜드. 6월까지 이어지는 도널드의 ‘꽥꽥 도시(콰키 다쿠 시티·Quacky Duck City)’는 산뜻하게 빛나는 파란색과 흰색, 노란색으로 가득했다. 디즈니와 테마파크에 별 감흥이 없던 나조차도 감개무량했다.
행진이 시작되자 평소 티격태격했던 미키와 친구들이 전부 새파란 세일러복을 입었다. 거리에서 춤추는 댄서들의 타이츠와 구두는 오리 다리처럼 샛노랗게 빛났다. ‘슈퍼스타’가 된 도널드덕을 모두가 추앙하는 모습에 코끝이 찡했다. 관객들은 진행자의 구령에 맞춰 “도나루도!” “꽥!꽥!” 을 외쳤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기들은 새하얀 오리 궁둥이 복장을 하고 아장아장 유원지를 누볐다.
아 참, 이 행사는 사실 1934년생 도널드의 90세 생일파티였다. 카메오로 시작해 악동 소리를 들으며 큰 도널드덕. 90년을 ‘존버’한 대기만성형 오리가 마침내 자신이 꿈에 그리던 도시에서 모두의 칭찬을 받으면서 생일잔치를 즐기는 모습이 어쩐지 고마웠다.
나는 안심하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Yeah, we love Donald Duck. The one and only Donald Duck~.”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4명의 기자가 돌아가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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