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둘러싼 사방의 바다는 모두 동포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에 왜 이런 풍파가 일고 소란이 일어나는 것인가.’
태평양전쟁 직전 히로히토 천황(1901∼1989)이 지은 이 짧은 와카(일본의 전통적인 정형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그가 육군의 강력한 전쟁 의지에 맞서기 위해 시를 읊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전쟁 결의를 늦추려고 했을 뿐인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이렇듯 천황제 국가 일본에서 천황의 전쟁 책임론은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일본 황족으로 태어났지만 전후 미 군정에 의해 황적이 박탈돼 평민이 된 저자의 자서전이다. 전쟁 당시 15세로 일본 해군에 징집된 저자는 전후 도쿄 전범 재판에서 천황의 전쟁 책임을 추궁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강경파 육군이 주도한 내각에 의해 전쟁 발발이 사실상 결정됐지만 이를 막지 못한 데에는 황실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A급 전범들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시킨 결정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해운업계에서 퇴직한 후 일본 신사의 본거지인 이세신궁에서 대궁사(大宮司·신궁을 지키는 우두머리)를 지낸 저자의 발언인 만큼 무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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