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전 ‘선재 업고 튀어’
비슷한 듯 색다른 구원 서사
◇최애, 타오르다/우사미 린 지음·이소담 옮김/144쪽·1만4000원·미디어창비
아이돌을 열렬히 사랑하는 팬, 비난받는 아이돌, 아이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시청하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며 책장을 뒤져 보다 깨달았다. 2021년 국내에 출간된 장편소설 ‘최애, 타오르다’와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한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최애, 타오르다’는 1999년생 일본 여성 작가 우사미 린의 작품이다. 2021년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양대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일본에서만 50만 부가 팔릴 정도로 대중성도 인정받았다.
‘최애, 타오르다’에서 일본 아이돌 마사키는 루머에 휘말린다. 팬을 때렸다는 것이다. 마사키는 사건의 전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실망한 팬들은 돌아서기 시작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비판이 쏟아진다. 아이돌의 팬인 여고생 아카리는 혼란스러워한다. 다른 팬들처럼 비난할지, 아니면 끝까지 사랑하는 이를 지지할지 고민한다.
‘선재 업고 튀어’에서도 아이돌 류선재(변우석)는 팬들의 비난을 받는다. 4인조 그룹 ‘이클립스’의 멤버 중 한 명으로 인기를 끌자 다른 멤버들의 팬들은 선재의 성공을 질투한다. 악플 탓에 선재는 우울증약과 수면제를 달고 산다. 선재가 세상을 떠나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팬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유도 닮았다. ‘선재 업고 튀어’에서 여주인공 임솔(김혜윤)은 하반신 마비로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상태다. 라디오에 출연한 선재가 솔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워요, 살아있어 줘서”라며 응원해준 뒤 살아갈 힘을 얻었다. ‘최애, 타오르다’에서 학업 성적이 좋지 않고 취업 준비에도 관심이 없는 아카리의 인생을 위로하는 것도 오직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아이돌)인 마사키뿐이다. 아카리는 마사키에게 집착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최애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불러 일깨운다. 포기하고 놓아버린 무언가, 평소에는 생활을 위해 내버려둔 무언가, 눌려 찌부러진 무언가를 최애가 끄집어낸다.”
아이돌은 사랑과 비난을 함께 받으며 살아간다. 관심 탓에 근거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돌에게 가장 뼈아픈 건 팬의 비난이다.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던 팬들이 돌아설 때 배신감을 느낀다. ‘선재 업고 튀어’의 선재와 ‘최애, 타오르다’의 마사키가 절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을 구하는 것도 팬이다. ‘선재 업고 튀어’에서 2023년을 살아가던 솔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돌 선재를 살리기 위해 15년 전으로 돌아간다. 물론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공상과학(SF) 영화 같은 일이다. 반면 ‘최애, 타오르다’가 제안하는 방식은 조금 더 현실적이다. ‘최애, 타오르다’에서 마사키는 결국 은퇴한다. 아카리는 마사키가 영원한 아이돌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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