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설 뒤집고 창의적 연구 내놓은 세계적인 석학 26인의 유년 시절
과학으로 이끈 원동력 다르지만, 풍부한 호기심 지속적으로 유지
◇큐리어스/리처드 도킨스 외 25인 지음·존 브록만 엮음·이한음 옮김/360쪽·1만9800원·페이지2북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아프리카 대륙의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주변 환경은 전원생활과 다름없었지만 정작 도킨스의 취미는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이 시기 자신을 동물학자로 이끈 계기가 있었는데 어린이책 ‘두리틀 박사의 모험’이었다.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두리틀 박사의 모험을 다룬 책으로, 매일 두리틀과 함께 상상의 세계에 빠졌다고 한다. 도킨스는 어린이책을 통해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습관, 진화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 인습을 타파하려는 자세 등을 느꼈고, 결국 진화를 연구하는 길에 들어섰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세계적인 과학자 26인이 어떤 호기심과 계기로 과학이라는 분야에 끌리게 됐는지 그들의 유년 시절에서 실마리를 찾아간다. 저자는 도서 저작권 대행사인 브록만사의 설립자이자 과학자와 사상가들의 모임인 ‘에지포럼’의 편집자 겸 발행인이다. 책에 등장하는 26인의 과학자는 기존의 통설을 뒤집고, 창의적인 연구물을 내놓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들을 과학의 세계로 이끈 원동력은 제각각 다르다.
우선 훌륭한 스승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경우다. 복잡계 이론의 석학이자 코넬대 석좌교수인 스티븐 스트로개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과학 선생님이 그를 수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작은 진자(振子)의 궤적을 측정하며 주기의 원리를 이해하는 실험에서 수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 그는 “두려움과 경외심이 온몸을 휘감는 듯한 경험을 했다. 내 삶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경제물리학자인 도인 파머 옥스퍼드대 교수는 어렸을 적 미국 뉴멕시코주의 한 시골 동네에서 이웃 주민으로 만난 20대 청년 물리학자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틈만 나면 그와 오토바이를 분해하고, 상대성이론을 토론하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결국 물리학과 경제학을 결합한 응용학문의 대가가 됐다.
‘다중 지능 이론’을 창시한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는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회과학자가 된 계기로 유년 시절 닥치는 대로 책, 신문, 잡지, 백과사전 등을 읽은 경험을 꼽는다. 특히 전기를 많이 읽었고, 지금도 누구보다 많은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읽고 있다고 한다.
풍족하지 않은 주변 환경이 과학자를 만들기도 한다. 신경과학자인 조지프 르두 뉴욕대 교수는 어렸을 때 도축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매주 토요일마다 도축 일을 했다. 과거에는 소의 머리에 총을 쏴서 도축을 했는데, 소 뇌에서 총알을 꺼내는 게 그의 주된 일이었다. 손가락을 소 뇌 속에 집어넣으며 공포, 생명, 사후세계 등에 관심이 생겼고, 지금은 뇌 연구 분야의 석학이 됐다. 심리학자인 고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유전질환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신체적 제약이 오히려 글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서 “나를 나이게 한 것은 고독이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석학들이지만 유년 시절은 평범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누구나 어렸을 적 갖고 있는 풍부한 호기심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 원동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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