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대본, 눈으로는 못 보니 대사 들으며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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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5월 18일 0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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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시각장애 4급 판정…"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연극 '웃음의 대학'으로 2년 만에 연극 무대 복귀
냉혈한 검열관 역할…"장관 제안 10초 만에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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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눈으로는 못 보니까 대사를 들으면서 암기해요.”

배우 송승환(67)이 2년 만에 복귀한 연극 ‘웃음의 대학’에 출연 주목 받고 있다.

5년 전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 장애 4급 판정을 받은 그가 어떻게 공연을 하는지 궁금했다.

최근 만난 송승환은 한 손에 은색 지팡이를 들고 나타났다. “현재 30cm 앞만 볼 수 있다”는 그는 “시각장애 4급 판정이어서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고 했다.

대사를 암기하면서 어떻게 연기하냐고 하자 그는 되레 “더 좋은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암기 속도도 더 빨라지고 작은 소품의 위치까지 꼼꼼하게 챙기게 되더라고요. 상대방의 표정이 궁금하면 가까이 가서 봐요.” 그는 과거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시력 저하로 실명 위기에 놓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병의 진행은 다행히 멈춘 상태다. 하지만 그는 “급속히 나빠진 시력은, 연극 무대에서 종종 걸림돌이 된다”고 했다. “암전 후 의자에 부딪히고 단에서 떨어질 뻔해서 연출이 무대에 있는 것으로 수정해줬죠. 연출의 배려와 후배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눈이 아닌 ‘귀’로 대사를 외우는 일은 녹록지 않다. 송승환은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귀로 집중한다”며 “상대의 대사, 감정, 느낌 등을 교감해야 하기 때문에 귀가 굉장히 예민해져야 한다”고 했다.

특히 2인극인 이번 작품에선 상대 배우와 빠른 템포로 대사를 주고받기 때문에 대사 순서가 헷갈리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며 그는 매번 방법을 찾으며 이겨냈다. 지팡이에 라이트를 달아 시야를 밝히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작품 공부를 이어 나갔다. 외국 영화의 자막을 한국어로 듣기로 위해 넷플릭스 본사에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다 끝났구나. 배우로서 연출가, 기획자로서 조기 은퇴를 해야 하나 했는데 그러기엔 하고 싶은 게 있고 좋아하는 일들이 있어서 생각을 바꿨죠. 방법을 하나 하나 알 때마다 재미있더라고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안 하고 자포자기하는 게 문제죠.”

‘웃음의 대학’은 연극열전의 20주년 기념 시즌 ‘연극열전10’ 두 번째 작품으로 9년만에 돌아왔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6월9일까지 열린다.

송승환은 ‘웃음의 대학’에서 전시 상황이란 이유로 웃음을 선사하는 희극을 없애려는 냉정한 검열관을 맡았다. 공연 허가를 받으려는 작가와 7일 간 대립하다가 연극을 통해 공권력에 가려진 인간성을 찾아가는 역할이다. 배우 서현철과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오른다.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으로 국내에선 ‘연극열전’이 2008년 초연한 뒤 2016년까지 35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 열풍을 일으켰다. 송승환은 2022년 연극 ‘더 드레서’ 이후 차기 작품을 물색하다가 운 좋게 ‘웃음의 대학’ 대본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을 택한 이유가 있다. “더 늙으면 검열관 역할을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는 “‘웃음의 대학’은 검열관이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없다”며 “스스로 코믹한 연기를 만들 필요는 없는 역할로 억지스럽지 않고 흐름이 자연스러워 좋다”고 했다.

송승환은 “특별한 계획은 없다”면서도 “올해는 바쁠 것 같다”고 했다.

“‘웃음의 대학’이 끝나면 바로 어린이 뮤지컬 ‘정글북’을 바로 올려야 하고 7월에는 파리로 가서 KBS와 올림픽 개막식 해설을 해야 해요. 그일 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9월에는 ‘파주 페어 북 앤 컬쳐’를 하니깐 그때 한 번 오세요.”

시력을 잃고 있지만 배우이자 공연 제작자, 연출가, 예술 총감독로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는 실천하는 쪽”이라며 “스스로 길을 만들지 않아도 저한테 의뢰와 부탁이 들어오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행정관으로 제안을 많이 받았고, 장관 제안도 받았다”는 그는 “행정 능력도 없고,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건 체질에 안 맞아 10초 만에 다 거절했다”고 했다.

3년 전 코로나19로 시작한 유튜브 채널 ‘원더풀 라이프’도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우리 시대 원로 예술인들의 인생을 전하는 채널로 구독자 25만 명을 넘었다. “최근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다는 2030 구독층이 늘어났다”며 표정이 환해졌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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