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일상을 위대하게… 의례 통과해 초월에 닿는 인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5일 01시 40분


결혼식에서 위험한 종교 의식까지… 의례의 인류사적 가치-기능 소개
연대하고 의미 찾는 인간의 본성… 소속감 속 대의 헌신하게 만들어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 지음·김미선 옮김/408쪽·2만원·민음사

의례는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 성취감 있는 삶을 가능케 하며 공동체의 연대감과 결속력을 강화한다. 미국의 대학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축하하는 학생들(위쪽 사진)과 스페인 산페드로의 불 위 걷기 의례. 사진 출처 픽사베이·위키피디아
의례는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 성취감 있는 삶을 가능케 하며 공동체의 연대감과 결속력을 강화한다. 미국의 대학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축하하는 학생들(위쪽 사진)과 스페인 산페드로의 불 위 걷기 의례. 사진 출처 픽사베이·위키피디아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도 부부가 될 수 있다. 졸업식에 가지 않아도 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이런 의례에 집착할까. 세계 많은 지역에서 불타는 숯불 위를 걷거나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독특한 의식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다. 이런 무모한 일을 왜 하는 걸까.

그리스 출신으로 미국 코네티컷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젊은 시절 고국에서 본 순례 행렬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참여자들은 손과 무릎에 피가 흐르는 가운데 교회당으로 향하는 높은 계단을 기어 올라갔다. 이는 신앙에 기초한 행위지만 종교와 결부되지 않은 여러 의례도 높은 수준의 고난을 강요한다. 때로는 기괴하거나 부질없어 보인다. 저자의 주된 관심은 ‘왜 의례들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왔을까, 이것들이 인간 사회에서 갖는 기능은 무엇일까’에 있다.

의례는 개인 차원에도 존재한다. 테니스 선수 나달은 경기 전 강박장애 환자를 연상시키는 루틴을 밟는다. 경기장에선 항상 모든 라인을 오른발 먼저 넘어간다. “그것들은 내가 머릿속에서 추구하는 질서가 주변과 일치하도록 정리하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의례가 번성하고 중요한 부분은 당연히 ‘집단적’ 의례다. 저자는 집단적 의례에 수반되는 연극성은 감각을 깨워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굉장한 것으로 탈바꿈시킨다고 설명한다. 콘서트장이나 운동 경기장에서 듣는 함성에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은 순간이다.

하지만 불 위를 걷기 같은 위험한 의례가 존속되는 이유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저자는 스페인의 산페드로에서 지역민들의 꼬임에 말려들어 실제 불 위를 걸었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두려움은 안도와 자부심으로 바뀌었고, 하루가 지나도 이어지는 강한 행복감을 맛보았다고 그는 설명한다. 몰입이 강할수록 자아가 확대되고 집단과 초월적인 일체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체감은 집단에 순기능으로 작용한다. 높은 수준의 충성을 요구하는 집단일수록 대가가 큰 입단 의례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집단이 요구하는 위험을 감수한 개인은 더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고 집단의 대의에 헌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조직생활에도 의례는 존재한다. 회사에서 경험하는 회의와 휴식, 파티 등도 조직의 결속을 강화하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의식이다.

하지만 의례의 기능을 파고들었다고 해서 저자가 이런 의례 모두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집단적 의례는 나치의 열병식처럼 어둠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오늘날의 인류는 불과 수십 년 전과도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의례는 적절한 맥락에서 실행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고 못 박는다.

“의식은 우리가 연대하고 의미를 찾고, 누구인지 알도록 돕는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의례적인 종(種)이다”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뒤 이의를 달기는 힘들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일상#의례 통과#종교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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