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찾는 게 남편감이라면 내가 도와줄게. 나랑 수업하자. 넌 분명 금방 터득할 거야.”
19세기 영국 런던 사교계. 브리저튼 가문의 셋째 아들 콜린 브리저튼(루크 뉴턴)은 오랜 친구인 페더링턴 가문의 셋째 딸 페넬로페 페더링턴(니콜라 코클란)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짝을 찾아 사교계에 데뷔했으나 남자에게 인기 없는 페넬로페에게 이른바 ‘연애 수업’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페넬로페는 콜린에게 교양 있게 부채질하고 눈웃음을 짓는 방법을 배운다. 촌스러운 옷 대신 화려한 드레스를 맞춰 입은 덕에 조금씩 남자의 관심을 얻는다. 하지만 페넬로페는 사실 어릴 적부터 친절하던 콜린을 짝사랑하고 있다. 과연 두 사람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 “끔찍하게 피둥피둥” 사라지다
1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브리저튼 시즌 3’은 원작 소설인 ‘브리저튼 : 마지막 춤은 콜린과 함께’(신영미디어)에 없던 ‘연애 수업’을 새로운 장치로 활용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콜린이 페넬로페의 연애를 돕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 미묘한 감정이 생겨나는 점을 섬세하게 다룬 것. 드라마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영어무문 1위에 올랐다.
브리저튼 시리즈는 19세기를 배경으로 영국 런던 브리저튼 가문 8남매 이야기를 담은 시대극이다. 원작과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페넬로페의 다이어트다. 원작에서 페넬로페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건 외모 때문이다. 다이어트에 열중하지만 다른 여성에 비해 밀리는 외모를 원작은 이렇게 표현한다.
“(페넬로페는) 다른 레이디들보다 몸무게가 10kg은 족히 더 나갔으며, 긴장만 하면 얼굴이 얼룩덜룩해졌기에, 런던 사교계 무도회만큼 그녀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으므로, 한마디로 말해 얼굴이 얼룩덜룩하지 않을 때가 없다는 뜻이었다. …(중략)… 살이 10kg도 넘게 빠졌으므로, 이젠 자기 눈으로 봐도 ‘끔찍하게 피둥피둥하다’에서 ‘보기 좋게 토실토실하다’로 한 단계 올라섰다 볼 수 있었다.”
반면 드라마에서 페넬로페는 통통한 몸매를 지녔지만 다이어트에 열중하지 않는다. 대신 사교계에 걸맞은 대화 방법을 배우고 화장이나 의상에 변화를 꾀한다. 드라마의 총괄 제작자인 제스 브라우넬은 미국 버라이어티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린 페넬로페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페넬로페의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외모보다 자신감의 수준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노처녀’ 페넬로페의 나이가 바뀐 것도 주목할 점이다. 원작에서 28세인 페넬로페의 나이는 드라마에서 19세로 설정됐다. 17세에 사교계에 데뷔했지만 11년 동안 시집가지 못했던 원작의 설정보다 설득력 있다. 특히 원작이 묘사하듯 당시 결혼에 목메는 사교계에서 서른 살 가까이 결혼하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4월이 눈앞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이곳 런던은 새 사교계 시즌 준비로 분주하다. 야망에 불타오르는 사교계의 어머니들은 온 런던에 널려 있는 드레스 가게에서 자신들의 사랑스러운 데뷔탕트들을 유부녀와 노처녀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특별한 드레스를 찾고 있다.”
● 가십 난무한 사교계에 피어난 ‘우정’
페넬로페가 사교계에 떠도는 소문을 모은 소식지를 만드는 ‘레이디 휘슬다운’이라는 사실이 드라마에서 콜린에게 들통나는 점도 원작과 다른 점이다. 원작에선 레이디 휘슬다운의 정체는 비밀 속에 숨겨져 있다. 반면 드라마에선 콜린이 페넬로페의 정체를 밝혀내기 직전으로 묘사돼 극적인 긴장감을 불러온다. 펜 하나로 귀족과 왕실까지 쥐락펴락하는 ‘레이디 휘슬다운’의 정체가 사실 수줍음 많은 소녀라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남성 위주 사회에서 결혼에만 목메야 했던 당시 영국 여성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원작은 결혼과 가십에 목메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풍자한다.
“한 장짜리 소식지는 금세 장안의 화제가 됐다. 런던 사교계는 어딜 가나 레이디 휘슬다운의 얘기로 뜨거웠다. …(중략)… 가십이란 마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극심하게 중독이 된 상태, 울며 겨자 먹기로 5페니를 내고 신문을 사 볼 수밖에.”
사교계에서 서로를 질투하고 비난하는 여성들이 서로 화합하는 과정을 ‘우정’ 서사로 보여주려고 한 점도 드라마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레이디 휘슬다운을 동경하던 엘로이즈 브리저튼(클라우디아 제시)이 자신을 소식지에서 비꼰 페넬로페(레이디 휘슬다운)와 틀어졌다 다시 화해하는 장면은 원작엔 없지만, 드라마에 추가된 부분이다. 드라마 제작자인 미국 프로듀서 숀다 라임스는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사교계)에서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남성보다 서로에게 훨씬 더 큰 힘이 되는 완전한 여성들의 우정을 보여줄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 원작도, 드라마도 ‘착한 남자’에 끌리다
원작이건 드라마건 방황하는 페넬로페를 구원한 건 다름 아닌 콜린이다. 이성과의 대화를 전혀 하지 못하던 페넬로페가 콜린에게 끌리는 건 그가 친절하기 때문이다. ‘착한 남자’에게 끌리는 페넬로페의 마음을 원작은 이렇게 표현한다.
“콜린 브리저튼은 착한 남자였다. 착한 남자. 그 얼마나 하찮고 우스운 단어인가. 그런데 진부하기까지 한 그 단어가 그에게는 완벽하게 어울렸다. …(중략)… 착한 남자에게 사랑을, 비록 일방적인 사랑이라 할지라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분별력 있는 처사가 아닌가.”
사치와 타락, 아름다움과 화려함으로 점철된 시기인 리젠시 시대(1811∼1820년)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를 펼쳐낸 드라마의 매력은 시즌 3에서도 여전하다. 상류층 사교계의 전성기였던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전통 시대극을 벗어난 매력이 돋보인다. 시즌이 거듭할수록 서사의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드라마의 인기가 여전한 비결은 화려한 배경에 운명적 사랑을 가미한 로맨스물의 성공 법칙을 그대로 따른 덕이다.
원작을 쓴 건 미국 작가 줄리아 퀸이다. 퀸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예일대 의대에 진학했으나 의대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 드라마 인기 덕에 원작 소설이 2021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1위를 차지해 4주간 자리를 지켰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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