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팔자? 사람이 달나라 갔다 온 지가 언제고, 지금 인공지능(AI)이 판 치는 세상에 음양오행, 주역 그런 점치는 소리 비슷한 게 말이나 돼. 그거 전부 혹세무민해서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야?”
이 방면 공부를 한다고 하니 가까운 친구가 한 말이다. 대학 다닐 때 마르크스 책이나 제법 읽었다는 친구다. 과학을 알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을 모르고하는 소리다. 인간은 본능과 지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성은 임종을 앞두고 지성이 끝나는 곳에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본능 지성 영성이 한 몸에 늘 함께 있다. 이런 영성은 시대, 지역,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게 없으면 인간은 지능 로봇과 다름없게 된다.
얼마 전 최민식 김고은이 주연한 영화 ‘파묘’가 순식간에 관객 1000만을 넘었다. 풍수를 소재로 한 오컬트 무비다. 여기에 음양오행 같은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미국이나 영국 이탈리아에서 이 영화가 개봉됐다면 이 정도의 열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풍수 사주팔자 음양오행 주역 등은 동양인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한자문화권의 나라에서 수 천 년간 지배층에게든 일반 백성에게든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기적 유전자’의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식으로 말하면 사회적 유전자 ‘밈’(meme)이다.
이러니 한국인이 사주를 풀고 혹은 점을 쳐서 현재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심리적 위안을 받거나, 앞으로 나아갈 불투명한 프로젝트에 대해 확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의 발길로 도사님들의 집에 불이 나는 것이 아닐까. 서울 압구정동 같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거리에 사주 타로 같은 점집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면서 주역과 명리학을 공부해 아 분야 박사이기도 한 양창순 원장의 저서 ’명리심리학’에 이런 사례가 나온다. 언젠가 자책감으로 죽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자신이 저지른 어리석은 일들을 생각하면 자기 몸을 칼로 찌르고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그래서 양 원장은 심리 상담과 함께 명리학적 해석도 들려주었다.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표정이 환하게 살아나고 희망을 걸고 견뎌보겠다고 했다. 진전이 없었던 병세의 차도가 눈에 띄게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아마도 당신의 사주가 이런데 지금이 나락 같이 보여도 분명 좋아지게 되어있다는 말을 해주었으리라.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두 번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오기 마련이다. 이럴 때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극복하는첫 단계가 자신에게 주어진 현 상황을 운명, 다른 말로 팔자를 ‘수용’하는 자세다. 이는 자연과학으로, 수학적 통계 분석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수용’해서 심신의 평안에 도움이 되고 극복의 발판이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 당사자에겐 더 없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이런 영성적 작업들을 굳이 ‘신과학’이니 ‘경험적 통계’라고주장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삶의 오랜 지혜이며 카를 융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을 지 모른다. 사주팔자를 본다고 점을 보러간다고 숨기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또 그것을 맹신해 집안 거들 낼 일도 아니다. 내 팔자가 궁금하다면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고 하면 안된다. 명리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살아갈 방도를 제시하고 있다. 운명은 주어진 것이지만 바꿀 수 없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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