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연차적으로 정비발굴조사가 실시돼왔다. 2017년 발굴조사에서는 서문지가 새로 발견됐다. 익산토성이 돌을 사용해 쌓은 석성이란 사실도 확인됐다.
백제 왕이 기거한 궁궐에 사용했던 수부(首府)명 기와 등 백제 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돼 익산토성이 남쪽으로 약 2㎞ 떨어진 왕궁리유적과 연계된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조사에서는 익산토성의 남쪽 곡간부 평탄지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 지역은 지난 1981년 남쪽 성벽 조사 중 탐색조사가 이뤄졌으나 당시 집수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조사 결과, 직경이 각각 동서 9.5m, 남북 7.8m, 최대 깊이는 4.5m에 이르는 평면 원형 형태의 다듬은 거대한 석재 집수시설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집수시설에서 일부가 무너져 내렸으나, 하단부는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것으로 보아 과거 한 차례 보수가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은 자연 암반을 인위적으로 깎고 다듬었다. 특히, 북동쪽은 물이 중앙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암반을 가공했다. 남쪽에는 석재를 이용해 최대 80㎝ 정도 높은 단을 쌓았다.
집수시설 안에서는 칠피갑옷조각을 비롯해 추정 봉축 목재 조각, 인장와 등 백제 기와 조각과 토기편이 나왔다. 칠피갑옷조각 출토는 공주 공산성, 부여 관북리유적에 이어 세 번째다.
이들 유물은 해당 집수시설이 백제시기에 사용됐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그중 봉축 목재 조각은 문서를 분류할 때 사용되는 추정되는 직경 2.3㎝ 크기 목재 막대기다.
‘정사(丁巳) 금재식(今在食: 현재 남아있는 식량’”이란 묵서명이 확인됐다. ‘丁巳(정사:597년 혹은 657년)’이란 기년을 통해 익산토성 운용 시기도 추정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추가 연구를 통해 해당 유물이 봉축편으로 확인될 경우 백제시기 문서 보관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자 익산토성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이 될 것”이라며 “이번 조사 결과는 자연 지형을 이용해 유수(流水) 관리 방법과 이를 활용한 백제인의 토목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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