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한 경험 없는 한국 역사
정복-침략 중심 SF서사 드물어
우주에 초월적 질문 던지는 작품
◇미래로 가는 사람들/김보영 지음/240쪽·1만 원·새파란상상
‘한국 SF만의 특징’에 대해 김보영 작가는 제국주의적 우주관의 부재를 말한 적이 있다. 20세기 중반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군수 경쟁의 일환으로 우주기술 경쟁에 나서고 그 여파로 과학소설이 크게 발전했다. 특히 1969년 미국 우주인들이 먼저 달에 착륙한 이후 영미권 SF 영화나 문학에서 백인 비장애인 남성들이 우주선을 타고 외계로 ‘진출’해서 낯선 행성을 ‘정복’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한국은 이 우주기술 경쟁에 참가한 적이 없다. 게다가 한국 근현대 역사 자체에 남의 나라를 침략하거나 식민지배한 경험이 부재하기 때문에 한국 SF도 우주에 대해서 침략과 정복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SF 작가는 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래로 가는 사람들’에서 김보영은 이 질문에 대해 대단히 과학적이면서 또한 상당히 초월적인 우주관을 내놓는다. 주인공 성하(星河)는 우주의 끝으로 여행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끝’을 찾으려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우주는 팽창하는가? 이 경우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에 ‘끝’은 있을 수 없다. 아니면 우주는 둥근 띠 모양으로 끝과 끝이 이어졌는가? 이 경우 우주의 ‘끝’을 찾아 계속 나아가면 결국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제자리’란 어디인가? 지구인에게 ‘제자리’는 집, 결국 지구다. 그런데 공간적으로 지구로 돌아오더라도 여행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르기 때문에 우주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찾아온 지구는 성하가 떠나온 과거의 지구가 아니라 미래의 지구가 된다.
성하는 우주 여행자이기도 하면서 시간 여행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주 여행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시대와 문명이라면 이렇게 우주의 시간 속을 여행하는 자는 성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성하는 우주의 끝을 찾아 여행하면서 지구의 역사가 바뀌고 문명이 변하며 시간 여행자들이 신으로 숭배받거나 악마로 여겨져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종교적인 인식 변화 또한 목격하게 된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에서 주인공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의 끝을 찾아 여행하면서 외계 행성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탐구한다. 가장 특이한 점은 작가가 인간의 인식이 왜 그렇게 변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빛은 이렇게 인간을 속이는 자연 현상이기도 하고 우주를 여행하는 속도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인간이 우주 여행에서 어떤 구도자적인 의미를 찾게 만드는 초월적인 상징이기도 하다. 김보영은 모든 작품에서 이렇게 과학적인 설명을 인간 존재에 대한 고찰과 연결해 자연스럽게 줄거리에 녹여내는 탁월한 관점을 보여준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우주에 대한 천체물리학적 고찰이면서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김보영은 작품 속에 자신이 신이라 가장하는 사기꾼 시간 여행자 악당도 등장시키고 우주선 액션 장면도 선보인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초월적인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더없이 인간적인 이야기이며 우리 시대 가장 독특한 우주 SF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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