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타계 100주년… 자화상 등 그림 163점 출간
소유권 분쟁 끝에 2019년 공개… 시각예술가 면모 뒤늦게 알려져
‘변신’ 등 특유의 어두운 세계관… 수식 없는 문체 닮은 소묘 다수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안드레아스 킬허 외 지음·민은영 옮김/372쪽·4만8000원·문학동네
도화지 위에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젊은 남성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짙은 일자 눈썹, 오뚝 선 콧날, 곱게 가르마 탄 머리카락 덕일까. 남성은 미남이다. 하지만 눈은 공허로 가득 찼다. 굳게 다문 입 때문에 표정이 없어 보인다. 색을 칠하지 않고 검은 연필만으로 선을 그려낸 탓에 허무함마저 감돈다.
왜 남성이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그림이 체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1901∼1907년 사이에 그린 자화상이란 사실을 알면 여러 상상에 빠지게 된다. 인생 내내 불행에 갇혀 살았던 카프카에게 어둠은 늘 함께하던 굴레일까. 초현실주의로 인간의 고독을 탐구한 카프카에게 외로움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자고 일어나니 벌레로 변해 있던 주인공이 등장한 중편소설 ‘변신’(1916년)처럼 카프카가 그린 자신의 얼굴은 괴이하기 그지없다.
3일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아 출간된 카프카의 그림집이다. 카프카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오랜 소유권 분쟁 끝에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카프카의 그림이 2019년 공개됐고, 이후 시각예술가로서의 카프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신간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출간됐다. 이스라엘국립도서관 등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카프카의 그림 163점이 실렸다.
카프카는 주로 소묘를 그렸다. 간단한 선만으로 인체나 건물을 표현했다. 미사여구 없이 간결하고 정밀하며 무미건조한 카프카만의 문체와 닮았다. 또 카프카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인체의 독특한 움직임을 세밀하게 그렸다. 장편소설 ‘심판’(1925년)처럼 진짜같이 정밀하게 구성된 거짓 세계를 그려낸 문학 세계처럼 말이다. 카프카를 제대로 된 화가로 인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그의 그림을 감상하면 문학 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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