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박수근미술상 홍이현숙 작가
‘폐경 의례’ 도발적 퍼포먼스부터… 길고양이 입장서 본 ‘석광사 근방’
“예술적-사회적 의미 사이에서… 여성-환경-공생 진지하게 접근”
《제9회 박수근미술상 홍이현숙 작가
미술 작가 홍이현숙 씨(66·사진)가 제9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5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을 기리는 뜻에서 2016년 제정됐다.
홍 작가는 1988년부터 특정한 매체 혹은 주제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고 있으며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 기획을 통해 낙후되거나 사라지는 터전과 지역민의 삶을 고민하는 협업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심사위원장인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은 “지난 30여 년간 예술적, 사회적 의미 사이에서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여성, 환경, 생태, 공생 문제 등을 진지하게 고민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14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
1980년대 홍익대 조소과를 다녔던 홍이현숙 작가(66)는 첫 개인전에서 베어진 가로수 나무를, 두 번째 개인전에선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을 전시했다. 조각을 공부했던 그는 설치 작품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한없이 삐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소과는 남녀 성비가 반반이었는데 프로젝트 선정 등 여러 기회가 남학생 위주로 돌아갔어요. 우리 과 후배로 이불 작가가 있었는데, 이불도 퍼포먼스와 설치를 했잖아요. 나도 그 판에 섞이려 애쓰기보다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리고 설치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그 후 홍이현숙의 작업은 ‘폐경 의례’(2012년) 같은 도발적 퍼포먼스부터 길고양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 ‘석광사 근방’(2020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은 젊은 큐레이터와 비평가에게 주목받고 있는데 최근 5년간 아르코미술관 개인전, 광주비엔날레 등에 참여한 데 이어 올해도 부산비엔날레,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인전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홍이현숙의 작품을 소개한 독립큐레이터 임수영은 “퍼포먼스와 영상, 참여 작업을 아우르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30여 년간 이어 온 드문 여성 작가”라고 평했다. 이슬비 평론가는 “어떻게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는지에 대한 주제를 유행으로 좇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오랫동안 탐구해온 작가”라고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작업실에서 만난 홍이현숙은 “처음 수상 소식을 듣고 내가 받아도 되나 생각했지만, 한 동료 작가가 ‘상이란 그 상을 받는 사람이 상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줘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칠고 무모한 것이 원래 나의 정체성인데 좀 더 바깥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을 ‘여성주의 작가’로 보는 시선에 대해 “내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제가 여성이었기에 조각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으려 했고, 짜인 판 밖으로 나와 관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동물과 인간이 전쟁한다면? 난 기꺼이 동물 편에 서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퍼포먼스 영상 속 그녀는 맨발과 맨손으로 산을 오르고, ‘축지법과 비행술’을 배운다며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다. 홍이현숙은 “한없이 삐치되 한 발짝 물러나 유머와 해학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분노가 끓어오를 때도 있지만 화를 내면 좋은 작업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태도가 여성적인 것 아닐까요?”
그는 자신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으로 ‘고집’을 꼽았다. “스스로 나 잘났다 여기며 일으키고 불 지르고 부추겨야 해요. 자기가 잘났다는 걸 알아야 하죠. 후배 작가들도 보면 저마다 예쁘고 훌륭한 면이 있어요. 그에 대한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뻔한 작업을 하지 않기 위해 매일 이동하는 길도 하루는 버스를 타보고 다른 날은 자전거를 타며 ‘다름’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무모해 보이지만 결국에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는 수상을 계기로 “박수근의 미술 세계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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