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한 시절 속에서 작가를 버티게 한 것[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8일 01시 40분


연이은 가족 수감 등 고초 속
묵묵히 토지 써낸 박경리 작가
“따스하게 감싸준 분들 덕” 회고
◇토지 1/박경리 지음/472쪽·1만7000원·다산책방

이호재 기자
이호재 기자

“모진 시간을 거친 김지하 시인(1941∼2022)을 버티게 한 건 장모 박경리 작가(1926∼2008)일지도 모른다.”

2022년 5월 9일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김 시인의 빈소. 전날 별세한 김 시인의 마지막 길에 모여든 옛 친구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입을 모았다. 이들은 기자에게 “박 작가가 사위의 옥살이를 뒷바라지했다”고 말했다. 박 작가가 김 시인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수감되자 면회를 다니며 사위를 챙겼다는 것. 6·25전쟁 때 부역자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남편에 이어 사위의 옥살이까지 몸소 도와야 했다.

사위가 수감됐을 때 박 작가의 기분은 어땠을까. 지난해 6월 개정판이 출간된 대하소설 ‘토지’를 읽다 박 작가가 마음을 털어놓은 글을 찾았다. 1994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박 작가가 기고한 글 ‘토지를 쓰던 세월’이 ‘토지’ 개정판 서문을 대신해 실렸다.

“그때 (사위의 옥살이) 일에 대해 말한 적도 글로 쓴 적도 별반 없었던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토지’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 수도 있겠으나 자신에 관한 일은 거의 말하지 않는 성미 탓도 있었을 것이다.”

박 작가는 1994년 8월 ‘토지’를 완간한 뒤에야 20년 전 사건에 대해 털어놓았다. 말을 아낀 이유에 대해 박 작가는 “구질구질한 신세타령 같기도 했고 되살리기가 아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박 작가가 입을 닫고 산 건 남편에 이어 사위까지 옥살이한 시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무서운 세월이었기 때문에 딸아이와 나는 침묵을 했던 것인데 그 무서운 세월을 질러서 여기까지 왔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맞서 홀로 딸을 키운 박 작가는 사위가 감옥에 가자 집안살림을 책임져야 했다. 작품을 쓰며 손주를 등에 업고 다니며 엄혹한 시절을 버티려 발악했다. 박 작가는 “처지를 하소연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행위”라며 “묻는 사람은 부담스럽고 난처한 일”이라고 했다. “언어는 결코 완전한 것이 될 수 없다. 듣는 사람은 진실을 평가할 수 없고 말하는 사람은 진실을 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박 작가는 수난을 버티게 한 건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주신 분들” 덕이라고 고백한다. 1974년 박 작가가 동아일보에 소설 ‘단층’을 연재했을 때 그를 챙긴 건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였던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고문이다. “김 선생은 벌판만 같은 내 집에 들러 우리 생활을 목격하곤 했다. 따뜻하고 안쓰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그분의 눈빛을 우리는 잊지 못했다. 신문사에 돌아가서는 박 선생을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올 8월 완간 30주년을 맞는 ‘토지’가 25년 동안 연재된 건 오롯이 작품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작품을 쓰는 건 작가고, 작가를 버티게 하는 데엔 결국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통의 이유를 묻지 않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 말이다.

#토지 1#엄혹한 시절#박경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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