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판화에 철학적 메시지 담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4일 03시 00분


고향 사라고사의 ‘고야 미술관’
허위 정보 다룬 ‘블랙 페인팅’ 눈길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1799년경). 사라고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1799년경). 사라고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해 설명한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하이에르 포르투스 페레스는 “벨라스케스가 표현에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면, 고야는 인간 내면을 표현하는 길을 열었다”며 “개인적으로 더 매력을 느끼는 예술가는 고야”라고 했다. 구드룬 마우러 역시 “수십 년간 고야를 연구했지만,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끊임없이 새 질문이 나오는 작가”라며 “고야의 예술 세계를 탐구하기로 한 것은 내 생애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했다.

이렇게 전문가들을 고야가 매료시키는 것은 그가 인간 본성, 자아, 정체성 등 철학적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나 국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었던 서양 미술 역사의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고야의 예술 세계를 그의 고향 사라고사에 있는 고야 미술관의 판화를 통해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보통 의뢰를 받아야 그릴 수 있는 유화는 주로 왕이나 귀족, 교회를 위해 그려진다. 그러나 판화는 비교적 제작비가 저렴하고 여러 장 찍을 수 있기에 대중에 유통하고 판매하는 목적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고야는 이런 판화의 특성을 활용해 ‘전쟁의 참상’ ‘카프리초스’ 등 좀 더 솔직한 자기 생각을 담은 판화집을 만들었다. ‘카프리초스’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같은 상징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마우러는 “고야가 만든 판화집 중 ‘보편적 언어’라는 제목을 단 것도 있다”며 “이것을 보면 고야가 시각 언어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 본질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그가 말년에 자택 벽에 남긴 벽화인 ‘블랙 페인팅’ 역시 가짜 뉴스, 마녀사냥 등 현대 사회에도 문제로 떠오르는 주제들을 다룬다. ‘블랙 페인팅’이 전시된 갤러리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꼽힌다.

#고야#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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