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자 같으면 남자의 대답에 분노를 금치 못했을 테다. 하지만 남자의 대답을 들은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남자의 손을 어루만진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프렌치 수프’를 다 보고 나면 이해가 되는 장면이다. 영화는 요리사와 미식연구가인 두 남녀가 음식을 매개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상대방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게 최고의 기쁨인 두 사람에겐 아내나 남편이란 호칭보다는 ‘나의 요리사’가 둘 사이를 정의해주는 이름표다. 연출을 맡은 트란 안 훙 감독은 이 영화로 제76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은 1880년대 프랑스다. 미식연구가 도댕과 그 집의 요리사 외제니는 20년을 함께한 중년의 연인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외제니가 텃밭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채소를 따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어지는 요리 장면은 이 영화가 음식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릴 정도다. 재료 손질부터 칼질, 굽고 찌고 볶는 모든 과정이 뛰어난 지휘 아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보는 듯 아름답다. 도댕은 외제니가 자신의 프러포즈를 번번이 받아주지 않자 마지막으로 그녀만을 위한 혼신의 요리를 준비한다. 30분 이상을 대사 없이 요리하는 장면만을 보여준다.
프랑스 대표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가 외제니 역을, 브누아 마지멜이 도댕 역을 연기했다. 두 사람은 실제 연인으로 지내며 딸도 낳았지만 2003년 헤어졌다. 전 연인과 영화로 재회하는 ‘쿨한’ 프랑스식 사고가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트란 안 훙(쩐아인훙) 감독은 ‘그린 파파야 향기’(1994년), ‘씨클로’(1996년) 등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은 인물이다. 트란 안 훙 감독 특유의 빛과 색채가 이번 영화에서도 돋보인다. 그는 칸영화제 시상식에서 “이 영화는 30년을 함께한 아내 트란 누 옌 케(쩐느옌케)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했다. 영화의 원제는 ‘Pot-au-Feu(포토푀)’. 직역하면 ‘불 위에 올려진 냄비’이자, 뭉근하게 끓인 프랑스 가정식 고기 스튜를 뜻한다. 수십 년 동안 타지 않고 뭉근하게 익어간 관계에 대한 영화감독다운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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