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저작권 논란 후 경영난… 주관사 바뀌게 된 ‘이상문학상’
독자 우려 경청해 명성 되찾길
◇일러두기 : 2024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조경란 외 지음/320쪽·1만6500원 문학사상
겉모습에 이끌리는 걸 비난할 수 없다. 책이라고 다를까. 서점을 거닐다 보면 먼저 표지에 눈길이 간다. 표지가 마음에 들면 책을 펼쳐 든다. 읽다 보면 애정이 생기고 사고 싶어진다. 책에 빠져든 뒤엔 상관없지만, 첫 만남에 이끌림을 만드는 건 표지의 힘이다. 그래서 요즘 출판사들은 표지 디자이너에게 많게는 수백만 원씩 쓴다. 표지에 쓸 그림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그런데 한결같은 표지로 독자의 사랑을 받은 책이 있다. 시인 이상(1910∼1937)의 초상을 내세운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다.
오뚝 바로 선 콧날, 두툼한 입술과 쌍꺼풀 없는 눈. 이상의 얼굴은 1977년 제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부터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상의 초상이 표지 왼쪽 위에 있는 현재와 달리 47년 전엔 오른쪽 아래에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 표지가 달라질 가능성이 생겼다. 11일 문학사상이 이상문학상 주관사를 다산북스에 넘겼기 때문이다. 다산북스는 상금, 심사위원, 표지 등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출간되기까지 확실하진 않지만, 표지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일러두기: 2024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현 표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과거에도 작품집 표지가 잠시 바뀐 적이 있다. 1977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표지는 2012년에 달라졌다. 2012년 표지에서 이상의 초상은 오른쪽 위에 작게 들어갔다. 반면 수상자인 소설가 김영하의 얼굴이 표지 절반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크게 들어갔다. 2013년 김애란, 2014년 편혜영, 2015년 김숨, 2016년 김경욱까지 총 5년 동안 표지는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2017년 원래 표지로 돌아왔다. 독자들로부터 “과거 표지가 더 낫다”는 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임지현 문학사상 대표는 이상문학상 매각 이유로 “지속적인 경영난”을 들었다. 또 문학계에선 2020년 수상자 저작권 논란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우수상 통보를 받은 작가 3명이 출판사의 ‘수상작 저작권 3년 양도’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어 수상을 거부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문학사상이 논란이 된 계약 조건을 수정했지만, 권위에 타격을 입으면서 작품집 판매량이 줄었다.
“작품 선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 “독자를 위한 상이 돼 달라”…. 이상문학상 주관사가 바뀌었다는 뉴스에 달린 댓글들이다. 대부분 대학생 때부터 수십 년 작품집을 읽어 왔다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처음 작품집에 눈길을 돌린 건 이상의 얼굴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품집을 꾸준히 사게 된 건 작품의 문학성, 수상자 선정 방식 등 내실 때문이다. “새 옷을 입더라도 작가들에게는 존경 어린 지지를, 독자들에게는 유수의 걸작을 건네는 문학상의 본질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의 선언이 말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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