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만큼 학계에서 깊이 있게 연구된 분야는 별로 없다. 20세기 냉전을 거쳐 21세기 미중 패권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질서를 형성한 핵심 동인이 2차대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련 학술서들이 나왔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는 ‘선한 연합국 vs 탐욕의 추축국’이란 대립 구도다. 이들 진영 간의 패권 경쟁과 이데올로기 갈등 등이 대전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원로 현대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 전통적 견해와 결이 다른 수정주의 시각을 담았다. 2차대전을 이미 식민지를 거느린 기존 ‘영토 제국’과, 이 대열에 끼기 위해 도전한 신흥국들 사이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한 것. 이 구도로 보면 식민지에서 고혈을 짜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당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도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관점에 따라 저자는 2차대전의 시작점을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이 아닌, 일본이 만주를 침략한 1931년으로 본다. 이후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1937년 중일전쟁 등 식민지 침탈을 둘러싼 전 지구적 분쟁 과정이 2차대전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 것.
군인뿐 아니라 2차대전을 맞은 당시 민간인들의 경험이나 감정, 심리 등을 깊이 있게 분석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민간인을 일종의 군인으로 간주하는 전쟁의 ‘민간화’가 이례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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